목회칼럼,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을 읽고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을 읽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
“할머니 집에 가면 아무리 잘해주셔도 등에 진 배낭을 못 벗고 있는 것 같아.”
재수생(再修生) 아들이 자신에게 잘 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평일 내내 지내다가 주말이면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다. 그분들이 들으면 섭섭해 하시겠지만 나는 이 말을 금방 이해했다. 나도 내 집이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은 집에서 자기가 제일 편한 옷을 입고 지낸다. 그 모습은 편할 뿐이지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아내는 언제나 유행이 한참 지나 버린 딸의 바지를 입고 있다. 고등학생 딸이 걸치고 있는 옷은 목이 다 늘어진 오빠 티셔츠이다. 아들은 더 가관이다. 날이 더우면 웃통을 벗고 있고, 언제나 내 파자마 반바지를 자기 옷으로 삼는다. 아마 우리 가족들의 평상복을 사진을 찍어 올리면 아웃리치 지역주민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내가 우리 가족의 이러한 ‘치부’를 장황하게 설명할까? ‘사람은 내 집에서 스스로가 된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우스꽝스러워도 그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사랑스럽다. 내 집에 있는 옷은 나의 분신과 같은 것이다. 최근에 읽은 일본작가 기시미 이치로가 쓴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은 나의 본 모습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추하든 아름답든 시기를 받든 질투하든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당신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있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이 비열하다고 느끼고, 그걸 고상하게 바꾸기만 하면 멋있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이런 구절도 발견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움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비전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 면에서 내 본래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처럼 느껴진다. 사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때때로 내 마음을 정직히 표현하는 것 또한 내가 자유롭지 않으면 용기 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왕기상의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힘든 모습을 남김없이 토로했다.
“여호와여 이제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가져가 주십시오. (중략)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매우 열심히 섬겼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중략)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서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원망과 엄살이 있고 과장된 표현이 있다. 그는 그의 말대로 정말 ‘죽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7천명의 남은 자들처럼 모든 예언자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솔직한 표현을 통해 드릴 수 있는 최고로 솔직한 기도를 올려드렸다.
아들러는 남에게 잘 보이려하지 않을 때 우리가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목사인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설교를 잘 하려고 긴장할 때 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나는 헐렁헐렁하고 낡은 내 집 옷이 좋다. 머리도 안 빗고 세수도 안한 휴일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좋다. 이상한 옷들을 입고 다니는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좋다. 외출 할 때 예쁜 모습도 좋지만 때때로 화도 내고 짜증도 내는 민낯의 모습이 정이 간다. 적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건할 때의 내 모습도 좋아하시고, 낙심하여 약해져 있거나 화내는 못난 내 모습도 역시 좋아하시리라 생각한다. 그런 하나님 앞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 배낭의 짐을 풀고 집처럼 쉴 수 있는지 모른다.
/ 서재범 목사(신용산, S브릿지공동체)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