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마음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마음
 
“가족이 각자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모이면 불편하고, 예배를 드려도 형식적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떻게 하면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누구보다 아끼고 기뻐하던 교회였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모두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바울에게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빌립보교회 성도들 간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특히 여성 지도자였던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반목이 깊었다. 그래서 바울이 생각해낸 해법이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마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자비와 긍휼이 있거든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나타내며 한마음으로 같은 것을 생각함으로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시오”(빌 2:1~2). 
왜 그들은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서로 같은 마음이 안된 걸까? 바울은 그 이유를 ‘이기심’과 ‘허영’이라고 말씀한다(빌 2:3~4). 이기심은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고, 허영은 나 자신을 한껏 부풀려서 포장하고 과장하는 마음이다. 한마디로 나의 자존심과 감정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전혀 문제가 없고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죄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독선적, 자아도취적인 마음은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이 모두 나와 내 필요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집중해주고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바울은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있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뭐라고 했을까?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빌 2:3)라고 권면했다. 여기서 ‘겸손한 마음’으로 번역한 헬라어는 ‘굴욕을 겪다’라는 단어와 ‘재갈을 물리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재갈을 물린 소를 생각해보자. 소는 절대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주인이 소에게 굴욕적으로 재갈을 물렸기에 주인에 의해 통제된다. 바로 이것이 겸손한 마음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것은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사람에게 굴욕적인 환경을 허락하심으로써 ‘예수의 마음’(빌 2:5)을 억지로 품게 해서 하나님의 통제를 받게 할 수 있다.  
이번 설 명절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내 부모님은 평생 할머니를 모시고 사셨다. 최근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넘어져서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노년의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할머니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드렸는데, 할머니가 저녁 식사 내내 쉼 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할머니를 부모님이 수발드는 모습을 내 딸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가족예배를 드리며 손녀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셨다.
“어려서 받은 상처로 평생 어머니가 미웠는데, 이렇게 70이 다 되어서 대소변 갈아드리며 처음으로 어머니를 안아드리게 됐다. 내가 죄인이다. 너희들은 이 할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 어머니도 말씀하셨다. 
“나도 평생을 미워했다. 그저 평안히 주무시다가 천국 가시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결국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대소변을 갈아드리는데 전혀 냄새가 안 나는 은혜를 주셨다. 이제야 미움의 전쟁을 그치게 됐다.”
우리가 가족과 같은 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과 허영을 내려놓지 못해서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다. 같은 마음, 겸손한 마음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굴욕적인 사건을 허락하실 때 품게 되는 마음이다. 모두 이 마음으로 나아갈 때 풀리지 않던 가족 간의 관계가 풀리게 될 것이다. 
/ 이승민 목사(여호수아청년부)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