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소망을 가져라!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소망을 가져라!”
“성경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다음 달에 월세를 낼 수 있을까, 카드값을 낼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부족한 존재이다. 우리는 알 수 없다”와 같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철학이 시작되었고, 신학도 생겨났다. 결핍은 오히려 우리를 진정한 필요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통로다. 그래서 성경도 인간의 결핍과 무기력함에 대한 결론을 절망으로 매듭짓지 않고, 소망으로 연결하고 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기독교 진리가 주는 최고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불안해하고 염려를 느끼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공감하시며,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결핍이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서 과연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가가 중요하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와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대안과 가치를 따라 바벨탑을 쌓으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살게 될 낙원은 우리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헬라어 ‘후토퍼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 곳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곳은 찾을 수도, 도달할 수도 없다.
구원이라는 단어도 ‘신적수동태’가 사용된다. 구원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찾고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구원의 은혜를 불가항력적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마치 성령이 우리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이 임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성육신 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와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으니 소망을 가져라.”
물론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한다. 오히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불안과 염려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고,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다. 현실은 우리가 타협하고 쫓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숙제와 같다. 단순히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따라가고 붙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초월해야 할 영역이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부르심 가운데 세워진 것이라면, 비록 현실의 문제가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불안과 염려의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을 고백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최대흥 목사(요셉청년부)
우리가 불안해하고 염려를 느끼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공감하시며,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결핍이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서 과연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가가 중요하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와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대안과 가치를 따라 바벨탑을 쌓으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살게 될 낙원은 우리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헬라어 ‘후토퍼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 곳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곳은 찾을 수도, 도달할 수도 없다.
구원이라는 단어도 ‘신적수동태’가 사용된다. 구원은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찾고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구원의 은혜를 불가항력적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마치 성령이 우리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이 임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성육신 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와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으니 소망을 가져라.”
물론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한다. 오히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불안과 염려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고,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다. 현실은 우리가 타협하고 쫓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숙제와 같다. 단순히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따라가고 붙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초월해야 할 영역이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부르심 가운데 세워진 것이라면, 비록 현실의 문제가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불안과 염려의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을 고백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최대흥 목사(요셉청년부)
현실의 문제가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불안과 염려의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불안과 염려의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는 청년들의 신앙적인 고민과 질문에 대학청년부 목회자들이 권면과 조언을 건네는 코너다. 고민 및 질문 보내실 곳: joo@onnuri.org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