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멘티에게] "아버지 품 안에서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멘토가 멘티에게
“아버지 품 안에서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늘 걱정이 되고, 자꾸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고,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익숙하게 통제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두려움은 필요한 감정이다. 선에 대해서도, 악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고, 죄를 무서워하고 멀리하는 게 중요하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없이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고, 훈육의 길로 인도할까? 두려움을 대면해서 받아들이고, 그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두려움을 제어하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용기가 발현돼 성과에 도움을 준다.
나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한 적이 있다. 한 구간이 공사로 폐쇄돼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내 뒤를 따라오는 큰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고 좋아하는데도 무섭게 짖으며 내 뒤를 따라오는 개를 보니 심장이 두근대고 겁이 났다. 그 개를 피해서 초인 같은 속도로 그 마을을 벗어났던 적이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직장, 주거, 동반자를 정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청년의 때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비상을 원하지만, 날아오르고 나면 더 높이 날아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두려움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치고, 내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를 키워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
악한 영이 미혹하는 두려움은 경계하고 이겨내야 한다. 궁극의 두려움은 죽음이다. 우리는 부활 소망의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훈련이다. 순종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보는 체험이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우리 같은 사람이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바울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로마로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
‘내 평생 가는 길 평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이 찬송 가사처럼 평안하고, 담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찬양하면서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 쉽지 않아도 이런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거친 파도가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겠다”라고 고백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
인생의 경로를 오롯이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용기 있게 전진하고, 닫으시면 절제하며 멈춰 서면 된다. 사탄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정말 그것만 가지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욕심의 애착과 집착을 없애야 용기를 얻는다. 욕심을 버리면 얻는다. 공동체에서 사랑을 나누며 힘을 얻는다. 환경을 보고 이성을 믿는 게 아니라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샘을 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된다. 모든 청년이 믿음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기를 축복한다. 많은 청년이 “내 아버지 품 안에서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라고 고백하고, 두려움을 뒤로한 채 전진하기를 바란다.
/ 이원장 멘토(여호수아공동체)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고,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익숙하게 통제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두려움은 필요한 감정이다. 선에 대해서도, 악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고, 죄를 무서워하고 멀리하는 게 중요하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한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없이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고, 훈육의 길로 인도할까? 두려움을 대면해서 받아들이고, 그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두려움을 제어하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용기가 발현돼 성과에 도움을 준다.
나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한 적이 있다. 한 구간이 공사로 폐쇄돼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내 뒤를 따라오는 큰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고 좋아하는데도 무섭게 짖으며 내 뒤를 따라오는 개를 보니 심장이 두근대고 겁이 났다. 그 개를 피해서 초인 같은 속도로 그 마을을 벗어났던 적이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직장, 주거, 동반자를 정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청년의 때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비상을 원하지만, 날아오르고 나면 더 높이 날아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두려움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치고, 내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를 키워야 한다”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
악한 영이 미혹하는 두려움은 경계하고 이겨내야 한다. 궁극의 두려움은 죽음이다. 우리는 부활 소망의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훈련이다. 순종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보는 체험이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우리 같은 사람이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바울이 고난 중에 있을 때, 로마로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
‘내 평생 가는 길 평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이 찬송 가사처럼 평안하고, 담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찬양하면서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 쉽지 않아도 이런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거친 파도가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겠다”라고 고백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
인생의 경로를 오롯이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용기 있게 전진하고, 닫으시면 절제하며 멈춰 서면 된다. 사탄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정말 그것만 가지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욕심의 애착과 집착을 없애야 용기를 얻는다. 욕심을 버리면 얻는다. 공동체에서 사랑을 나누며 힘을 얻는다. 환경을 보고 이성을 믿는 게 아니라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샘을 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된다. 모든 청년이 믿음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기를 축복한다. 많은 청년이 “내 아버지 품 안에서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라고 고백하고, 두려움을 뒤로한 채 전진하기를 바란다.
/ 이원장 멘토(여호수아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