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닮아가기!
목사님, 질문있습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닮아가기!
매번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저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죄를 지을 때마다 죄책감에 빠지는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습을 일방적으로 나무라고 혼내시는 분이 아니다. 더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되고자 하는 선한 열망으로 보신다.
25살에 첫사랑이었던 아내를 만나 1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연애를 시작했더니 싱글일 때는 전혀 하지 않던 고민과 갈등이 생겼다. 아내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전시회와 음악회 가는 것을 좋아했고, 깊이 있는 지적 대화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해서 지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한 권으로 읽는 음악사, 미술사 같은 것을 사서 읽고, 생전 안 듣던 클래식을 들었다. 하루아침에 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랑했기에 변하려고 했다. 사랑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위해 변하고 싶은 고민과 갈등이 생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롬 7:15).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면 새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원함’과 거룩을 향한 ‘지향성’이 생긴다. 그래서 작은 것까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행함’이 바로 달라지지 않는다. 원함이 바뀌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갈등이 생긴다.
한 청년이 내게 물었다. “예수님을 믿는데 아직도 중독을 못 끊어서 괴로워요. 구원받은 게 맞나요?” 나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없으면 고민 자체를 안 한다”고 답했다. 고민하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음에 계신다는 증거다. 안 믿는 사람은 이러한 고민이나 갈등 자체가 없다. 그냥 몸이 이끌리는 대로 죄를 짓는다.
<로마서> 7장 16절에서 “죄에 대해서 원하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 증오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율법이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율법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제는 원하지 않는 걸 행하면 율법이라는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계속 걸린 채 차가 움직이면 타는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로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죄에 또 넘어지면 허탈함, 자책감,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죄가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거룩의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전혀 하지 않던 고민을 한다. 사랑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로마서> 7장 18절에서 사도 바울도 “죄에 압도당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19절에서도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거룩한 사람을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베드로도 그랬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때는 예수님이 그를 안 쓰시다가 정말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실패했다고, 보잘것없다고 고백했을 때부터 “내 양을 먹이라”면서 그를 사용하셨다. 성경은 거룩한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강직한 사람이 아니라 죄에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연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반복해서 짓는 모습에 낙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에 빠지는 것을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 거룩하고 싶은 그 열망으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닮아가기를 바란다.
/ 이승민 목사(여호수아공동체)
25살에 첫사랑이었던 아내를 만나 1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연애를 시작했더니 싱글일 때는 전혀 하지 않던 고민과 갈등이 생겼다. 아내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전시회와 음악회 가는 것을 좋아했고, 깊이 있는 지적 대화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해서 지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한 권으로 읽는 음악사, 미술사 같은 것을 사서 읽고, 생전 안 듣던 클래식을 들었다. 하루아침에 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랑했기에 변하려고 했다. 사랑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위해 변하고 싶은 고민과 갈등이 생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롬 7:15).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면 새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원함’과 거룩을 향한 ‘지향성’이 생긴다. 그래서 작은 것까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행함’이 바로 달라지지 않는다. 원함이 바뀌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갈등이 생긴다.
한 청년이 내게 물었다. “예수님을 믿는데 아직도 중독을 못 끊어서 괴로워요. 구원받은 게 맞나요?” 나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없으면 고민 자체를 안 한다”고 답했다. 고민하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음에 계신다는 증거다. 안 믿는 사람은 이러한 고민이나 갈등 자체가 없다. 그냥 몸이 이끌리는 대로 죄를 짓는다.
<로마서> 7장 16절에서 “죄에 대해서 원하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 증오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율법이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율법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제는 원하지 않는 걸 행하면 율법이라는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계속 걸린 채 차가 움직이면 타는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로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죄에 또 넘어지면 허탈함, 자책감,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죄가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거룩의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전혀 하지 않던 고민을 한다. 사랑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로마서> 7장 18절에서 사도 바울도 “죄에 압도당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19절에서도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거룩한 사람을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베드로도 그랬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때는 예수님이 그를 안 쓰시다가 정말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실패했다고, 보잘것없다고 고백했을 때부터 “내 양을 먹이라”면서 그를 사용하셨다. 성경은 거룩한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강직한 사람이 아니라 죄에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연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반복해서 짓는 모습에 낙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에 빠지는 것을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 거룩하고 싶은 그 열망으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닮아가기를 바란다.
/ 이승민 목사(여호수아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