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멘티에게] 성경에서 찾는 '하나님과 동행'
멘토가 멘티에게
성경에서 찾는 ‘하나님과 동행’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는데, 현실은 일에 쫓겨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날 크리스천 청년들이 세속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어쩌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이를 부추기는 세상의 소리와 유혹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오롯이 서 있지 않음을 통회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숨 가쁘게 살고 있다. 또 날로 경쟁이 심해져 차별화된 전략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않으면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청년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다른 원인은 없습니까?”
최근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청년들이 예전과 달리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했다. 게다가 눈빛이 흐릿해 보였다. 그래서 요즘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하루 3시간 정도 유튜브를 본다고 대답했다. 하루 활동 시간에 대략 20%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다. 청년들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4~5년 전과 분명히 달라졌는데,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크리스천들의 영적 눈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영적인 눈이 감기면 자연히 육적인 눈이 밝아지는 게 죄의 원리다.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분산시키는 주요 원인이 다른 데 있지 않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은 내 길과 하나님의 길, 두 갈래다. 같은 길을 가려면 누군가는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내 자리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발을 내딛고선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답하실 뿐이다.
세상과 악한 영에 미혹되어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입술로만 동행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구약에 하나님과 동행한 두 사람이 있다. 에녹과 노아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신약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에녹은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고, 노아는 오직 의를 전파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았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동행이다.
일이 많으면 마음이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르다에게 “한 가지면 족하니 마리아와 같이 좋은 편을 택하라”고 권면하셨다. 여기서 좋은 편이 무엇일까? 주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우리도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알고,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한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분의 기쁘신 뜻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행하는 사람들로 부르셨다. 더는 내 길에 서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 틈을 노리는 악한 영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영생의 소망을 빼앗기 때문이다. 세상 풍파가 거세지만,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증인으로 일어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담대히 선포하는 거룩한 세대로 살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순종의 발걸음에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 김경수 멘토 (요셉공동체)
우리는 이 세상을 숨 가쁘게 살고 있다. 또 날로 경쟁이 심해져 차별화된 전략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않으면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청년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다른 원인은 없습니까?”
최근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청년들이 예전과 달리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했다. 게다가 눈빛이 흐릿해 보였다. 그래서 요즘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하루 3시간 정도 유튜브를 본다고 대답했다. 하루 활동 시간에 대략 20%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다. 청년들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4~5년 전과 분명히 달라졌는데,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크리스천들의 영적 눈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영적인 눈이 감기면 자연히 육적인 눈이 밝아지는 게 죄의 원리다.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분산시키는 주요 원인이 다른 데 있지 않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길은 내 길과 하나님의 길, 두 갈래다. 같은 길을 가려면 누군가는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내 자리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발을 내딛고선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답하실 뿐이다.
세상과 악한 영에 미혹되어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입술로만 동행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구약에 하나님과 동행한 두 사람이 있다. 에녹과 노아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신약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에녹은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고, 노아는 오직 의를 전파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았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동행이다.
일이 많으면 마음이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르다에게 “한 가지면 족하니 마리아와 같이 좋은 편을 택하라”고 권면하셨다. 여기서 좋은 편이 무엇일까? 주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우리도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알고, 우리가 보배롭고 존귀한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분의 기쁘신 뜻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행하는 사람들로 부르셨다. 더는 내 길에 서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 틈을 노리는 악한 영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영생의 소망을 빼앗기 때문이다. 세상 풍파가 거세지만,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증인으로 일어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담대히 선포하는 거룩한 세대로 살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순종의 발걸음에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 김경수 멘토 (요셉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