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 - 더멋진당신 전도집회 / 오늘의 도전 내일의 영광-강영우 박사
<지상강좌>

강영우 박사
눈을 고쳐달라 했을 때 하나님이 ‘Yes’ 하셨다면
저는 공장에 들어가 소년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No’하셨고, 맹인재활센터에서부터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제가 10대 소년 시절이었던 1957~1961년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중학교 3학년때 축구를 하다가 눈에 공을 맞았습니다. 이것이 망막박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망막박리를 고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병원인 국립의료원에 가야했습니다. 그 의료원은 전쟁 후에 스칸디나비아 3국에서 병원을 지어주고 자기 나라의 의사와 간호사를 파송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덴마크에서 오신 안과 과장인 라손 박사에게 망막 수술을 여러 번 받았고, 절대 안정 속에서 약물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2년 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평생 장님으로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을 때, 장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 “장님이 된다고?” 반문하시며 병실을 떠나셨는데,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의사에게 확인을 한 후에 집에 가셨는데,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졸지에 저희 4남매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17살이었던 누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했습니다.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이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병 고치는 은사로 소문난 조용기 목사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눈을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계속 받았습니다. 그런데 눈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과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9살짜리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13살짜리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보내져 낮에는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장 먹고 잘 곳이 없어서 맹인재활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3남매가 뿔뿔이 흩어지던 날, 저희들은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서로 끌어안고 계속 울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최고 공직자가 갖춰야 할 3C
저의 인생은 가장 외진 곳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인도 부러워하는 명문가를 만들었습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백악관에 손님을 초청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이었습니다. 환영 인사가 끝나고 부시 대통령이 제게 “오늘 이렇게 당신을 섬기게 된 것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의 취임사를 통해 나타난 기독교 가치관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비롯된 자유와 책임, 선한 사마리아인에서 나온 긍휼과 포용의 가치관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매우 기쁩니다. 제 취임사를 줄줄 외우시는군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저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을 섬기고 국가를 섬기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몇 주 후에 제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백악관에 들어가 일할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책 한 권이 왔습니다. ‘생존지침서’였습니다. 그 책에는 대통령에게 임명을 받는 최고공직자는 3C(실력 competency, 인격 character, 헌신의 자세 commitment)가 갖춰져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3C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였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의 으뜸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돌로 항아리를 채울 때는 큰 돌을 먼저 넣고, 자갈을 넣고, 마지막에 모래를 넣어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 더 좋은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꿈을 갖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는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입니다. 예수님은 긍휼을 원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제사장,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피해갔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긍휼히 여겨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마음이 없는 사람은 공직자로 등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만난 긍휼한 사람은 3명의 미혼여성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2년을 보냈고, 기도하느라 2년 보냈고, 맹인재활센터에서 1년을 보냈기 때문에 5년 지각생으로 중학교 1학년을 18살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고아였기 때문에 학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사업가 이선희 선생님이 등록금을 내주고 입학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또 학비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때 권순미 선생님이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저의 3개월 치 등록금을 내주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강영우 학생을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오겠다”고 했을 때 “제가 데려다 주고 오겠습니다”라며 자원했던 여대생이 있습니다. 그 여대생은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이렇게 3명의 미혼 여성이 저를 긍휼히 여겨주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알려진 인생 이야기
제가 앞을 못 보게 된 이후 가장 비관했던 것이 글을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베스트셀러 도서를 13권이나 출간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빛은 내 가슴에>입니다. 이 책은 영화화 되어 제가 많이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입니다. 두 책 모두 기독교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쳐서 모두가 읽어야 하는 추천 도서가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예산으로 5개 국어로 번역돼 국립도서관에도 들어갑니다.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연락을 주신 분이 세계적인 부흥강사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억 인구가 보는 프로그램 ‘hour of power’에 출연해서 제 책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강 박사님, 당신의 생애와 눈먼 고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래서 가이드포스트에도 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부시 대통령에게도 책을 보냈는데 부시 대통령은 “당신의 책에는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 네 가지인 신앙과 끈기, 결심, 긍휼이 있다. 눈먼 소년이 배가 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목이 마를 때 물을 주고, 학비가 필요할 때 학비를 주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돌보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저는 문화방송에서 특집극인 ‘눈먼 새의 노래’를 제작할 때 에필로그에서 제 이야기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어 그 특집극이 미국에서도 방영되었고, 장애인의 날에 모든 이가 관람을 했습니다. 2년 후인 1997년 5월 2일,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 개막 전야에 백악관에서 방영되어 귀빈들이 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백악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주시기 위한 응답 ‘No’
어릴 적 맹인 재활센터로 보내졌을 때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실 수 있는가. 어렸을 때 들었던 사랑의 하나님,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왜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인가’하며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Yes’라고 들어주시는 것이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때로는 ‘Yes’, 때로는 ‘No’, 때로는 ‘기다리라’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No’로 응답하셔서 한 차원 위의 더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눈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Yes’ 하셨다면 저는 누나의 뒤를 이어 공장에 들어가 소년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No’로 응답하셨고 맹인재활센터에서부터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때 제 눈을 뜨게 해주셨다면 저는 기껏해야 공장장으로 끝났을 텐데 후에 저는 부시 대통령을 보좌해서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은 부자가 백악관에서 일하는 대를 이었습니다. 저는 차관보를 8년 동안 역임했고, 4성 장군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2009년 1월 11일, 저는 부시 대통령과 함께 오전에 백악관을 나왔고, 오후에는 제 아들이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갔습니다. 제 큰 아들은 하버드 의대를 나왔고, 안과의사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축복은 제 아들만 받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에 갔던 제 여동생은 자녀로 남매를 두었는데 딸은 약학박사고 아들은 미국의 대기업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철물점으로 갔던 제 남동생은 대학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그의 세 딸 중 두 딸이 박사가 되었습니다. 제 조카들은 14명인데 그 중 9명이 박사입니다. 저희 가정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