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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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말씀해설]“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맛있는 말씀해설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배의 핵심을 ‘영과 진리로(in spirit and truth)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요한복음 4장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이 유대인 남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 도중 갑자기 “왜 당신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살펴보면 예배의 중요한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요 4:21~24)을 생각해보면 첫째, 앞으로 참된 예배 시대가 올 것이고(십자가의 사역 완성 이후), 둘째, 참된 예배란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예배 갱신이 있을 것이며, 셋째, 참된 예배란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먼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열 왕국 당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3년 동안 포위를 당하다가 BC 722년 완전히 멸망하고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본토에 남아있던 사마리아 사람들도 반강제적인 이방인들의 혼혈정책과 이주정책으로 인해 정체성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만다(왕하 15:29~31). 그때부터 정통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를 매우 적대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혀 다른 정치적, 종교적 노선을 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의 모세오경을 거부하고, 사마리아오경을 만들어 사용하거나 유대인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리지 않고 그리심산에 사마리아 산당을 만들어 편리하게 예배드리고 있었다. 
복잡한 사생활을 가진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공히 예배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들 모두 마음은 없고, 건물을 숭배하는 태도를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채 위선적이었고, 외식하며 율법주의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 가운데 오신 목적이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라고 말씀하셔야만 했던 것 같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참된 예배에 대해 예수님은 앞으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의 공간을 넘어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될 새날이 올 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이 나타날 것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영’이란 성령(요 7:39, 20:22)을 가리키고, 진리(요 14:6)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한다. 
참된 예배는 성령 안에서,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영’은 ‘육체’와 반대되는 의미라기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키고 있다. 요한일서에서 ‘빛’(요일 1:5)과 ‘사랑’(요일 4:8)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듯, ‘살리는 것은 영’이라 할 때의 영은 생명(요 6:63)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구절은 성령의 임재가 있는 말씀, 성령의 감동이 있는 말씀을 따라 사는 예배자의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영혼이 거듭나고, 진정한 마음의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종합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예배란 하나님의 성품을 예배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그 말씀에 우리가 책임 있게 반응하는 것이다. 
참된 예배란 어느 특정 시간과 공간인 교회 안에 갇혀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일상에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