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이 본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일부분이다. 예수님은 이 기도문을 통해서 용서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이 본문에 나오는 ‘죄’라는 헬라어 단어는 ‘오페이레마타’이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경제적인 용어로 ‘빚, 부채’이다. 원문의 본래 의미는 ‘죄가 아닌 빚들을 용서해 달라’는 뜻이다. 영어 성경이 원문에 가까운 단어로 표기하고 있다.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NIV)”
이를 해석하면 “우리가 우리의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빚들도 용서하옵소서”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빚을 죄로 간주했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처럼 빚을 용서해 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기도문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사람은 흔히 자기에게 빚진 자들을 잘 용서하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 “우리가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하나님도 우리 죄를 사해주셔야 한다”는 기도가 마치 하나님의 용서가 인간의 용서를 모델로 삼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인간의 성정으로는 용서가 힘들다. 내적치유학교나 상담에서 용서하겠다고 고백한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만큼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제로 용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매 칠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신 15:1~2).
매 7년이 되면 채권자는 채무자를 용서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 스스로 용서가 어렵기 때문에 강제로 용서를 명령하고 있다. 또 용서하는 대상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아주 거창한 적들이나 원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교회, 직장 동료들이다. 사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빚을 지는 게 아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빚을 낸다.
둘째,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의 용서를 전제로 하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잘못 읽으면 마치 ‘우리가 용서하니까 하나님도 용서해 주셔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저자 마태는 공동체에서 용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율법의 해방법 때문에 우리끼리는 싫어도 마땅히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빚들도 어쩔 수 없이 꼭 용서해 주소서”라고 가르쳤다.
마태는 용서를 이상적인 공동체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며 예배드릴 때 형제와 다툼이 있으면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고, 예배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용서하기 힘든 우리에게 율법의 말씀처럼 억지로 용서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용서받고,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용서받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서빙고 상담실)
그런데 이 기도문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사람은 흔히 자기에게 빚진 자들을 잘 용서하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 “우리가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하나님도 우리 죄를 사해주셔야 한다”는 기도가 마치 하나님의 용서가 인간의 용서를 모델로 삼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인간의 성정으로는 용서가 힘들다. 내적치유학교나 상담에서 용서하겠다고 고백한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만큼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제로 용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매 칠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신 15:1~2).
매 7년이 되면 채권자는 채무자를 용서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 스스로 용서가 어렵기 때문에 강제로 용서를 명령하고 있다. 또 용서하는 대상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아주 거창한 적들이나 원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교회, 직장 동료들이다. 사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빚을 지는 게 아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빚을 낸다.
둘째,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의 용서를 전제로 하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잘못 읽으면 마치 ‘우리가 용서하니까 하나님도 용서해 주셔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저자 마태는 공동체에서 용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율법의 해방법 때문에 우리끼리는 싫어도 마땅히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빚들도 어쩔 수 없이 꼭 용서해 주소서”라고 가르쳤다.
마태는 용서를 이상적인 공동체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며 예배드릴 때 형제와 다툼이 있으면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고, 예배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용서하기 힘든 우리에게 율법의 말씀처럼 억지로 용서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용서받고,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용서받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오은규 목사(성동광진공동체, 서빙고 상담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