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부림절

본문 : 에스더 9장 1절~10장 3절/ 박종길 목사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것처럼,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유대인들의 대적인 하만의 음모를 무산시키고 유대 민족을 구원하는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을 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사랑의 드라마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표현돼 있지 않지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원자이시라는 믿음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절기인지에 대해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듯하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기념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신음에 응답하십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부르짖음에 신실하게 동행해 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에스더서의 결론 부분에서 부림절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림절은 어떤 절기일까요. 1, 2절 말씀입니다.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첫째, 부림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절 말씀에서 바사 제국에 있던 유대인들은 조서를 두 개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에스더 3장 13절에 있는 대로 정월 13일에 하만이 중심이 되어 선포한 조서입니다. 그 내용은 바사 제국에 거하고 있던 모든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에스더서 8장 9절에 있는 대로 모르드개가 중심이 되어 선포한 조서입니다. 그 내용은 모든 유대인들은 그들의 대적들에게서 자신을 방어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달력으로 보면, 정월 13일은 유대 민족들에게 절망이고 죽음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유대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대적들을 진멸하고 기쁨을 찾는 날이었습니다.  본문 구절은 두 번째 조서를 선포하고 난 후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유대인들이 대적들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이 승리하고 그 날을 하나님의 날로 선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첫 번째 선포된 조서는 두 번째 선포된 조서에 의해 무효화되었습니다. 첫 번째 조서의 내용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조서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키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과 사랑과 생명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10절 말씀 이후를 보면, 유대 민족들은 자신의 대적들을 죽일 때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행한 일은 보복을 위한 게 아니라 방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약탈과 분노에 의한 싸움이 아니라, 제국의 법령에 따른 정당 방어였습니다. 두 번째 조서 내용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대적들의 재산도 몰수할 수 있었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욕망, 분노, 시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되는 날’세상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핍박하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특별히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집요한 공격을 가합니다. 그래서 세상 전부가 멸망으로 치닫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선,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선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방어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20~23절 말씀을 봅니다.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유다인이 자기들의 이미 시작한 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둘째, 부림절은 슬픔이 기쁨으로, 애통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날입니다.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이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 받은 날을 기념해 민족의 절기로 규정합니다. 바사 제국에 있던 유대인들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도 모르드개의 명에 따르게 됩니다. 그 부림절은 예수님 시대까지 지켜졌습니다.  부림절은 유대인들이 원수의 손에서, 죽음과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고 평안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이 기쁨과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애통이 찬양으로 변했습니다. 공동 번역 성경은 초상일이 변해 축제일로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그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삶을 역전시켜 주시는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하만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5장 1절에서, 어떤 절기인지 확실치 않지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절기를 맞이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절기에 대해 많은 성경 학자들은 아마 부림절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절기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옆에 있던 베데스다 연못가를 지나셨습니다. 부림절은 유대 민족의 축제로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겼습니다. 그러나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인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환자들은 모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약으로나 의사로도 고칠 수 없어 오직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특별히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고통, 슬픔, 쓰라림,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환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대로 잊지 말자’예수님께서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가 변해 즐거움으로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삶이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잔칫집 같은 분위기로 바뀌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기적만 바라고 있던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시고 치유해 주신 것처럼, 유대 민족에게 부림절의 축제가 있던 것처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26~28절 말씀을 읽습니다.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셋째, 부림절은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대대로 기억하자는 뜻을 정하고 축제를 벌이는 날입니다. ‘부르’라는 말은 페르시아어로 ‘제비’라는 뜻입니다. 하만이 유대 민족을 진멸하기로 작정하고 그 날을 정할 때, 제비를 뽑았는데 그해 12월 13일이었습니다. 그것을 기념해 그 말대로 절기 이름을 삼았습니다.   12월 13일에 유대인들은 싸웠습니다. 페르시아에서 7만 5,000명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대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대인들은 13일이 아닌 14일을 절기로 지켰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연중 절기들은 유월절에서 시작해 12월의 부림절에서 마칩니다. 유월절과 부림절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부림절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아각 사람 하만에게서 지키신 것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두 절기는 싸운 날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싸움을 모두 끝내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평화를 기념해 축제를 벌이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이 뜻을 정하고 축제를 벌임 특히 부림절은 유대인들이 모여 뜻을 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림절을 맞으면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에스더서에 하만의 열 아들에 대한 이름이 나옵니다. 그것은 숨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한꺼번에 모두 처형된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들을 구제했습니다.  특히 양귀비 씨앗이나 과일을 넣은 삼각형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 과자의 이름을 ‘하만의 주머니’, ‘하만의 귀’라고 했습니다. 그 과자를 점심때부터 저녁때까지 계속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가면을 쓰고 축제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껏 술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주석가는 비판하고 있지만, 어쨌든 유대 민족들은 부림절을 매우 성대하게 치렀던 것입니다. 유대 민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 “뜻을 정하고”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자며 뜻을 모아 다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의 마지막에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눈물로 세례 받은 날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켜주신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부림절을 즐겼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며 과자를 만들어 먹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했습니다.  신앙은 뜻을 정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달 중에 하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기도를 드린다’, ‘그 날 만큼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신 것을 기억한다’라고 마음에 작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격적으로 만나주셨던 그날, 눈물로 세례를 받았던 그날의 은혜를 꼭 기억하실 것을 축원합니다. 10장 1~3절 말씀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부림절 사건 이후 많은 나라들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축복했던 아하수에로 왕은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로 인해 각 가정, 직장, 기업, 사회, 민족, 세계가 축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아닥사스다 왕모르드개는 높이 존귀케 되어 바사 제국에서 아하수에로 왕에 이어 2인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재물을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동포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그도 좋은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 느헤미야를 통해 바사와 메대 제국에 남았던 유대인들의 3차 귀환을 인도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도 복을 주시고 인도하시며 지켜주십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는 상황 역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한 에스더를 통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해주신 역사와 같이, 십자가를 통한 헌신과 희생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율법이 아닌 은혜의 법과 멸망이 아닌 생명의 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에스더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에스더서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 대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기억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어려운 삶의 상황을 역전시켜 주옵소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멸망과 저주와 죽음에서  생명과 구원의 자리로 인도해 주옵소서. 율법에서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