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탄생
사람들은 ‘좋은 아침’이라는 말로 인사를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잘 기억합니다. 많은 뉴스가 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뉴스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장 좋은 뉴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태초 이래로 이것만큼 큰 사건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늘 누가복음 2장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쁜 소식은 세밀한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1~7절) “세상에서 최고의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다”(8~14절) “기쁜 소식은 믿음과 순종으로 전파될 수 있다”(15~21절)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예언의 성취’ 먼저 1절부터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이 말씀을 보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을 하라는 명령을 따라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들어갑니다. 인구조사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관이 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낳고 구유에 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동안 구약에서 말씀해 오셨던 예언의 말씀을 따라 이뤄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시간, 장소, 인물, 배경 등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까요?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으로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장사지냈던 곳이고, 베냐민이 태어난 곳입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살던 곳이며 다윗의 고향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저는 작년 예루살렘 평화행진 때 베들레헴에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언덕이 있는 풍요롭지만 아주 작은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전해지는 곳에는 탄생을 기념하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호적을 하기 위해 유대로 가다가 베들레헴에 머물렀고, 바로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준비된 상황, 예비된 사람 이 내용을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황제 아구스도는 마침 이 때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징병과 세금징수를 위해 14년마다 한 번씩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인구조사를 할 때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본적지로 가서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사실 더 기막힌 기적은 요셉이 마리아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처녀는 일반적으로 12~14살 정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혼을 하고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결혼은 정혼기간이 끝날 때 하는 예식인데 결혼도 하기 전에 마리아가 벌써 아이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2장을 보면 처녀가 약혼을 하고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명백한 계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마리아를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허용하고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이처럼 모든 상황들을 세밀하게 움직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치밀한 계획 가운데 보내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아내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누리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가운데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는 필연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도 우리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킬 가장 좋은 기회로 삼으십니다. 우리를 불에 없어지지 않는 순금으로 만들기 위해 불러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기회로 만드시고 긴 터널을 지나 큰 빛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섬세합니다. 지금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산다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천사가 전한 ‘기쁜 소식’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8절부터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목자들이 밖에서 양떼를 칠 때 천사들이 와서 “놀라지 마라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주겠다. 너희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이곳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구주가 말구유에 있을 테니 가서 확인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목자들은 로마의 군대들에게 양도 빼앗기고 논도 빼앗기고 인권도 빼앗기며 누군가 구원해줄 구세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는 아무런 기쁨이 없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기쁜 소식(Good News)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매일 이런 기쁨 가운데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때문에 기뻐서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 속에 여러분의 신앙 속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날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었는데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있는 어떤 초등학생에게 ‘너 학교 다니는 것 재미있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이 제게 ‘공부하는게 재미있겠어요?’라고 대답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거운 책가방만큼이나 인생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전혀 기쁨이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서 불평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세주를 주신 것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번쩍 들어서 천국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우리에게는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약한 자 돌보시는 하나님 이 기쁜 소식을 목자들이 먼저 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 제사장이 먼저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목자는 세리처럼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너희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서입니다.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사람들, 여인들, 세리와 모든 연약한 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온 인류를 위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 모두를 품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어려분이 겪고 있는 모든 고민들을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지금 너무나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조차도 알고 계십니다. 저희 공동체에 젊은 부부가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가 건강하지 못해서 수술을 많이 했습니다. 백일째 되는 날에 의사가 이제 하나님께 돌려보내야 될 때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호흡기를 뗐습니다.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이를 천국으로 보내고 저는 그들을 위로하고져 식당에 함께 갔는데 그 자매님이 저를 도리어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자매는 눈물을 닦으며 “순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기에 하나님께서 저의 아이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확신과 성령님께서 내 안에 평강을 주시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내가 너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분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기쁜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분은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계속 감사한 일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잘 살기를 원하고,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고통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전파되는 복음 셋째, 이 기쁜 소식은 믿음과 순종으로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15절부터 21절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천사가 하늘로 올라간 후 목자가 서로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서 천사가 말한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까지 가기까지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날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기뻐하고, 날마다 믿음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지 못하면서도 겉으로는 믿는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굳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아마도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라고 외치며 나갔을 것입니다. 뛰어가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천사를 만났으며 메시아의 탄생의 소식을 들었다’라고 합니다. 다들 기이히 여기고 있는데 마리아는 이미 들었던 말씀을 확인하며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오신 하나님 저는 여러분들이 더 이상 우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울증이 사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슬픈 것들이 사라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최근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하나님’이란 책입니다. 지은이는 테리이서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맥도날드, 포드, 펩시의 광고를 기획한 사람입니다. 돈도 많이 번 사람인데 이 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찾으셨다. 다시는 하나님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을 오른쪽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다. 필요할 때마다 그 속에 손을 넣어 거기 계신 하나님을 확인했다. 거기가 편했다. 가까운 친구로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사업, 청구서, 지폐와 신용카드 열쇠 등으로 오른쪽 호주머니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왼쪽 주머니로 옮기기로 했다. 돈을 꺼내기가 훨씬 쉬워졌다. 생활은 계속되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큰집이 필요해서 이사를 했다. 할부금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왼쪽 주머니도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 하나님을 오른쪽 뒷주머니로 옮겼다. 나는 뭐랄까 무슨 용무가 있을 때만 만나는 그런 사람처럼 되었다. 세월이 계속 흘러갔다. 나는 하나님을 헌 바지 주머니에서 새 바지 주머니로 옮기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어느 날 내 귀여운 딸이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실에 누워있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했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로 손을 넣었지만 거기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 어디 계신 것입니까? 언제나 저를 떠나지 않고 제 곁에 계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 데일리의 작은 옷이 내 옆에 있었다. 데일리의 작은 주머니 위를 쓸어내렸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거기 계셨다. 하나님은 그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데일리와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를 끝까지 지켜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셨다.”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다면 하나님이 어느 주머니에 계신지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중심에 다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기쁨의 소식을 매일 매일 체험하며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