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대로 될지어다
지난주에 믿음시리즈 세 번째로 큰 믿음과 작은 믿음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믿음의 소유자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베드로였고 큰 믿음의 소유자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한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판단기준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환경과 이성과 육체를 의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바라보느냐 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외적인 것, 양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의 가치는 내적이고 질적이고 영적입니다. 질문하시는 예수님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믿음을 어떻게 축복하며 선포하셨는지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지난주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8장 13절에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믿음의 선포, 축복의 선포를 하시니까 그 즉시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3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예수님께서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니 백부장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에 이렇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네 기도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예수님의 축복의 말씀이 오늘 이 아침에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은 오늘 본문 말씀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9장 27~3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소경의 눈을 고쳐주실 때 두 소경의 믿음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래 내가 고쳐주지”라고 하시지 않고 질문을 하십니다. 28절을 다시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은 “내가 네 눈을 고쳐줄 것을 정말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냥 고쳐주시지 않고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는 반드시 고침을 받는 자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고쳐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공식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떡 하나 주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떡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했는데 내가 네 병을 고쳐줄 것이라고 정말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 때 이 소경이 “주여 그렇습니다. 당신은 내 병을 고쳐주실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이 당신에게 있음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환자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네가 이 일을 할 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기적은 인간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만으로 여러분이 자연히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내 의지와 내 결단으로 ‘주님 나도 믿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기 의지와 결단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 의지와 내 결단이 기적을 끌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선포의 요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35절에는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등장합니다. 그는 평생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자기 눈을 고치기를 원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으로 들어올 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디매오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를 그냥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몰라서 물어보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다 들으셨습니다. 그가 간절히 눈을 뜨기를 원한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네가 네 입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네 입으로 네 의지로 네 결단으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자마자 바디매오가 눈을 떴습니다. 믿음은 도구, 목적은 예수님 둘째, 믿음은 예수님의 구원과 능력을 이끌어오는 수단입니다. 믿음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때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릇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릇이 없으면 물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릇, 즉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그렇다면, 네가 정말 원한다면 강력하게 믿음으로 요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강력하게 하나님께 요청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 다 아시죠? 내가 모르는 것까지 다 알아서 응답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지로, 결단으로 요구하십시오. “주님, 내가 이것을 원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능력은 아닙니다.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에 “내가 믿습니다”라고 자꾸 말하면 믿음이 좋은 줄 압니다. 그 말 자체는 별 것 아닙니다. 그냥 조용히 “믿습니다”라고 상관없습니다. 그 단어를 강하게 말하느냐 약하게 말하느냐는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말 한마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말도 못하고 그냥 눈물만 흘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음입니다.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 안에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기적과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치유의 능력, 죄사함의 능력, 용서의 능력,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강렬하게 간절하게 꾸준하게 진실하게 그것을 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모하십시오. 갈구하십시오. 눈물을 흘리십시오. 주님은 내 한숨소리도 듣고 계십니다. 믿음은 구원의 수단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우리는 치유가 되고, 믿음으로 우리는 죽음과 저주에서 해방됩니다. 결단과 행동 요구하는 믿음 셋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이지만 믿음은 우리에게 결단과 의지와 행동을 요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니까 ‘웬 은혜인가, 웬 사랑인가’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더우드처럼 보따리를 싸서 선교사로 가야 합니다. 내 삶을 포기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단이요 행동이요 자기 의지입니다. 자기 의지 없이 병 낫기를 원하고, 자기 행동 없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지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의지와 결단과 행동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강렬한 영적 갈망, 영적 추구, 영적인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믿음의 결단과 내 의지를 사용해 “주여, 주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의 마음을 계속 흔듭니다. ‘너는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술 끊는다고 하면서도 어제도 술 마셨구나’, 너는 생활이 엉망이다, ‘오늘 결정해봐야 내일 다 번복할 것 아니냐’ 등 계속해서 우리의 약한 점을 말합니다. 오늘 결정은 감정적이지 않느냐, 네가 지성인이라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하지 않느냐 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내 의지와 내 믿음과 내 결단을 방해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믿음을 선포하려고 하면 갑자기 두렵고 겁이 나고 무섭습니다. ‘내가 이러다가 실수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실수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차피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완전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주시는 생각에 집중하십시오. 어떤 때는 성령의 감동이 와서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그래, 믿음으로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정반대의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믿음을 선택하십시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을 붙잡으십시오. 1%의 가능성에 여러분의 믿음을 집중하십시오. 99%의 불가능을 무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1%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과거에도 안 되었고 앞으로도 나는 안 돼”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은 오늘 회개하시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나는 하는 것마다 망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1%의 가능성에 축복하시고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선언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환자를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48~50절에는 옥합을 가지고 나온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42절은 여리고성에 있는 소경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옥합을 들고 온 여인이나 여리고성에 있는 소경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똑같습니다. 누가복음 8장 48절을 보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온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귀신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에게도 마태복음 15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들에게 한결 같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동일하게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 나는 99% 망했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1%의 가능성 밖에 없는데 주님께서 큰 기적을 베풀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믿음으로 나가면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네 믿음이 한국을 구원하였느니라. 네 믿음이 조국을 구원하였느니라.” 지금 한국의 현실이 불행할지라도 1%의 가능성이 있으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한국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의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때로는 진흙을 개서 눈에 붙이기도 하고, 단순히 손을 대기도 하십니다. 어떤 때는 손을 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설교를 들을 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밤에 자다가 기적이 일어날 수 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가 믿느냐’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입니다. ‘이것을 네가 이해했느냐’라고 묻지 않습니다. ‘오늘 네가 나를 믿겠느냐’ ‘성경의 말씀이 사실이라고 너는 믿느냐’ ‘예수님이 너를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을 네가 믿겠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마르다의 대답을 보십시오. 27절입니다.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주님 제가 잘 압니다’라고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습니까? 기적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믿으십시오. 믿음을 표현하십시오. 결단하십시오. 행동하십시오. 부족하고 실수가 있지만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믿음대로 될지어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