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간의 범죄로 인한 고난
여호수아 7장 1~15절_ 라준석 목사 힘들 때는 그냥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냥 나아가십시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알고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믿음으로 시작해 가다가 잘못됐으면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수정하면 됩니다.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사람들 오늘 본문에는 서로 상관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천을 짜듯이 서로 엮여가며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간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이성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진멸시켜야 할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며 삽디의 손자이며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진멸시켜야 할 물건의 일부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분노가 이스라엘에 대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아간의 범죄’사건입니다. 사건의 내용은 진멸시켜야 할 물건에 손을 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모든 것은 다 진멸시켜라. 태울 것은 태우고 타지 않는 것들은 여호와의 금궤에 들여서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희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다”(수 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손을 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손을 댔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마알’이란 단어에서 비롯된 것인데 번역하면 ‘몰래 행동하다’ 또는 ‘감추다’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사건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못 봤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아간은 몰래 행동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밝히 보였습니다. 이 사건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사람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이 사건과 대비되는 또 다른 이야기를 2~5절에서 보여주십니다. 아간이 범죄했을 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이성을 치러 올라갔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4절). 본문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신앙 고백적 선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는 아이성은 그들의 수가 적으니 2,000~3,000명만 올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판단의 근거는 온통 숫자와 규모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인간적인 판단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당시 아이성의 주민이 1만 2,000명 정도였습니다(수 8:25). 남자만 6,000명 정도였습니다. 노인과 아이들을 빼면 2,000명 정도입니다. 계산적으로 볼 때 2,000명과 2,000~3,000명이 싸우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자만심과 교만이 생기면서 영적으로 해이해지고 결국 패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내려서 물같이 된 것입니다(5절). 믿음으로 시작하라 오늘 본문에서는 아간의 범죄 사건과 아이성의 전쟁 사건을 함께 엮어가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일상적인 일들은 영적 사건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인간이 낙담하고 절망하고 패배하는 사건은 하나님의 분노와 연관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연관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과의 관계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축복하는 사건의 결과로 우리 가운데 저주와 복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쟁에서 대패한 이후에도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영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36명의 동포가 죽었고 우리가 바보처럼 패배한 민족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영적 비밀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패배사건 때문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마음이 녹아내려서 물같이 되었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하나님께 나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나왔을 때 자신들의 영적인 문제를 알게 됩니다. 영적인 문제와 일상적인 문제가 연결되어 있고, 일상적인 패배의 원인은 영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 때는 그냥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냥 나아가십시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알고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언제나 바른 길만을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길을 다 예상하고 갈 수도 없습니다.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알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궤도를 수정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해 가다가 잘못됐으면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수정하면 됩니다.온누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누리교회는 무작정 시작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작정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잘못되면 바로 수정합니다. 뺐던 순교의 칼을 다시 꽂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Acts29 비전을 가지고 끝까지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략이나 태도가 잘못되었다면 기도하며 바로 방향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고 방향을 수정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죄의 근원은 탐욕 10절과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거라! 왜 얼굴을 땅에 대고 있느냐?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어겼다. 그들이 진멸시켜야 할 물건을 가져가서 훔치고는 거짓말하고 자기 창고에 넣어두었다.’”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간의 범죄사건과 아이성 패배사건이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간이 범죄했기 때문에 아이성에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죄의 문제를 잘 가르쳐주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죄의 근원은 탐욕입니다. 여호수아서 6장 19절에 “여호와의 금고에 넣어야 되는데 아간은 자기 창고에 넣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탐심과 탐욕 때문입니다. 여러분, 욕심부리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살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아간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더 나은 것인 하나님을 포기하고 하찮은 물질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버리고 사람의 인정을 선택하고, 영원한 것을 버리고 일시적인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하라”(13절)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손대지 않아야 할 것에 손을 댔다면 그것을 불태워야 합니다(15절).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불로 당신 안에 있는 죄악된 것들이 모두 태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생각의 창고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님께서 제비 뽑아서 드러내기 전에 우리가 내어놓고 불태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 것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기도할 때 물질의 창고 안에 숨겨놓은 것들, 관계의 창고 안에 숨겨놓은 것들, 사상의 창고 안에 숨겨놓은 더러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중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언약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의 십자가의 피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언약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죄악이 발견되고 태워질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당신 안에 깊숙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더러운 것이 숨겨 있다면 오늘 주 앞에서 태워지고 제거되어 다시 한 번 아이성을 향해 달려 나가서 승리하는 놀라운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