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에베소서 4장 1~6절)
에베소서 4장 1~6절
이재훈 목사
하나 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 됨을 지키며,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올해 온누리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개인과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적용해야합니다. 교회에 이 말씀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때때로 교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대사관입니다. 대사관은 언제나 본국의 뜻을 따라야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뜻을 드러내는 공동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학자 하워드 스나이드는 오늘날의 교회가 기독교가 아닌 교회교가 되어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신앙이 교회 안에 갇혀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교회에 갇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신앙을 교회생활로 국한 시킵니다. 그래서 생활이나 역사속의 신앙이 아니라 교회 울타리 안에 갇힌 신앙에서 머물게 됩니다. 이들은 교회생활이 곧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성도는 신앙이 생활이 됩니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합니다. 반대로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무는 성도들은 교회 안의 활동에서만 영적인 의미를 찾고, 교회 밖의 생활에서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이끄심
에베소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교회의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시각을 넓혀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고 지평을 넓히는 곳입니다. 교회는 헬라어 에클레시아에서 유례 되었는데 여기서‘에크’는 ‘~으로부터’를 의미하고 ‘레시아’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스스로 선택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혼돈 때문입니다. 그 혼돈이 생기는 이유가 스스로 교회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서 교회를 선택하면 혼돈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여러분, 교회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롬 8: 30).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선택하해서 부르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선택은 우리가 시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선택이요,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내게로 올 수 없다’”(요 6: 44).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신 예수님
참된 교회가 되려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중에 만약 부르는 사람이 나였다면 절대 부르지 않았을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을 한 사람씩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과 당시 바리새인들의 제자훈련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제자훈련은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탈락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한 사람씩 부르시고 한 공동체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를 보십시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죄인 중의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가리켜 세리와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세리 마태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극우파들은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라도 세리와 로마제국의 하수인이 된 사람들은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열심당원입니다. 그 열심당원 중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여러분,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이 만났을 때 긴장감이 없었을까요. 아마도 긴장감이 엄청났을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핵심멤버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직업과 환경 등이 모두 달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이유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놀라운 비밀
예수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부르지 않았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서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공동체에는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부르심을 받아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갇힌 몸인 나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1절). 에배소서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선택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한 공동체들 이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 없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부르심을 받았으면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해야합니다. 합당하다는 의미는 저울의 무게를 동등하게 맞춘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권면한다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의 모든 내용을 근거해서 권면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순서와 원리
사도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근거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순서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다음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순서가 바뀔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십시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율법은 율법대로 행하면 축복하겠다고 했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축복했으니 받은 축복과 은혜에 합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니 하나님의 가족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몸 안에 들어왔으니 그 몸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네 종류의 하나 됨
“온전히 겸손하고 온유하게 행동하고 오래 참음으로 행동하되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화평의 매는 줄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2~3절). 하나 됨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네 종류의 하나 됨이 나옵니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 되셨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 되어 역사하고 계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본성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인 예수님의 두 개의 본성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신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육신의 옷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넷째, 지체들끼리의 하나 됨입니다. 첫 번째 하나 됨이 두 번째 하나 됨을 만들고, 두 번째 하나 됨이 세 번째 하나 됨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하나 됨은 네 번째 하나 됨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구원의 순서입니다. 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해 보십시오. 지체인 우리가 하나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전도됩니다. 우리의 하나 됨을 보며 예수님의 비밀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밀을 알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비입니까.
하나 됨 지키는 다섯 가지 태도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됨을 지키면 나타나는 다섯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겸손, 둘째 온유, 셋째 오래 참음, 넷째 용납하는 것, 다섯 번째는 화평입니다. 다섯 가지 태도를 나열한 순서마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겸손으로 시작해서 화평으로 끝났습니다. 겸손은 마음의 태도입니다. 화평은 관계 속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 됨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를 통해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 됨은 내면의 겸손이나 화평에 이르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태도를 가지는 데에도 단계가 있습니다.첫 번째 단계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마음을 낮은 곳에 두는 것입니다. 겸손과 굴욕은 갖은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고, 같은 취급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괜찮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불쾌해합니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굴욕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태도의 차이입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지만, 타인에 의해 강제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굴욕을 느낍니다.문제는 겸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짜 겸손은 자신이 겸손한 줄 모르는 것입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교만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 됨이 주는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화평을 이루게 하는 온유, 오래 참음 두 번째 단계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약한 것이 아닙니다. 온유는 강함입니다. 그러나 통제된 힘입니다. 부드러운 힘입니다. 모세는 온유했지만 연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힘을 쓸 때 쓰고 쓰지 않을 때 쓰지 않는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온유는 견딜 수 있는 힘입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예수님이 온유를 배우면 마음에 쉼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면 쉼을 얻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쉼이 없는 이유는 겸손하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생기고 분열이 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은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분노와 거리가 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서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이라는 뜻은 상대방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여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변화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변화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제자들은 모두 탈락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고 우리를 용납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고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여유와 여지를 허락하신 것처럼 상대방이 변화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것이 용납입니다. 용납할 때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며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4~6절).일곱 번씩이나 하나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소망, 한 몸, 한 성령,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을 일곱 번에 걸쳐 강조하면서 선언하는 것입니다.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의 진리이기 때문에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면 모든 교리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더 약해 보이는 몸의 지체들이 오히려 중요합니다(고전 12:20~22).서로가 서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눈이 손에게, 머리가 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필요 없다고 말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필요 없는 지체가 없고, 연약해 보이는 지체가 더욱 중요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내세울 것이 없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구원을 스스로의 업적이나 공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 안에 한 몸으로 부르셨음을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따라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