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도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할 뿐 아니라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가 약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이요, 유업의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영혼의 체온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기도가 그 사람의 신앙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배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를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책을 읽고, 세미나를 듣고, 연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을 보십시오. 아이는 직접 말을 해보면서 배웁니다. 기도를 배우는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듣고 배웁니다.
무엇보다 기도 먼저
다른 사람의 기도를 듣고 배운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순모임이나 기도모임에서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은 우리가 기도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신약에 나오는 서신서 앞부분에는 바울의 기도가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달하거나, 권면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가르침과 권면보다 중요한 것이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는 가르침, 기도 없는 권면은 아무런 역사를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변화시켜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직접 변화시켜 주신 것이 진정한 변화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 나오는 권면과 진리의 말씀을 보면 마치 기도를 풀어서 쓴 것 같습니다. 바울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던 내용을 가지고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전에 그 영혼을 위해 먼저 기도하는 것이 역적 지도자의 중요한 태도입니다. 사도바울은 누군가에게 권면하기 전에 그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영적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구성 요소
바울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바울의 기도처럼 영혼을 깨우는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을 한 문장으로 기록했습니다. 기도의 내용도 한 문장이었습니다. 압축된 문장이지만 그의 고백은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의 소식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생각하며 여러분으로 인해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15~16절).어떤 간구보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먼저였습니다. 이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의 네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찬양이고, 두 번째는 죄의 고백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이며, 네 번째가 간구입니다. 간구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와 자기 자신을 위한 간구가 있습니다. 기도를 세분화하면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순서 ‘다섯 손가락’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번갈아 잡으면서 기도하십시오. 먼저 엄지손가락을 잡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해주시길 바라며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난 속에서도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어찌되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높여 드리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길면 길수록 영성이 깊어집니다.
그 다음 손가락을 잡으십시오. 이제 찬양이 끝나고 죄의 고백입니다. 이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고 순결해집니다. 그 다음 손가락을 잡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감사의 기도제목을 찾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십시오. 귀한 성도들, 공동체, 건강, 자녀들, 교회, 은혜를 하나하나 제목 삼아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런 다음 간구하십시오. 자신을 위한 간구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이 나라와 민족, 교회, 잃어버린 영혼들, 선교사님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아버지
때론 우리는 기도의 순서를 바꿉니다. 엄지손가락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 일 때가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잡고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의 기도 순서를 보면 하나님을 향한 찬양, 송축, 그 다음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배소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다른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 언제나 함께 등장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믿음이 미래를 향할 때 그것을 소망이라고 하고, 믿음이 다른 영혼들을 향할 때 사랑이라고 합니다. 참된 사랑은 믿음을 만들어 냅니다. 또 소망은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에배소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구하며 중보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17절).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기도제목입니다. 이 기도를 보면 삼위일체 적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체험한 하나님, 사도바울이 만난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바로 여러분이 경험한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셨고, 우리 또한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영광의 아버지라는 것은 영광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광의 아버지라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광스런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도 주어 그들도 영광스럽게 하신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치심과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 했습니다. 믿음의 최고봉에 오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영적산맥의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
산의 중턱에서 바라보는 것과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안목이 다릅니다. 산등성이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데, 산봉우리에서는 보입니다. 영적 성장은 등산하는 것 같이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과 같은 산봉우리에 올라서 같은 광경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안내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고 아는 것입니다. 체험이 들은 것보다 강한 확신이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질수록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는 간구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뀝니다. 기도제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3절부터 14절까지 사도바울은 이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통해서 복 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앎이라.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앎이라. 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앎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처럼 우리 생애의 가장 귀한 소원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빛을 비춰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고, 계시는 밖에서 비춰주는 것입니다.
앞을 보기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시력입니다. 아무리 환하고 밝은 햇빛이 있어도 시력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빛입니다. 시력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죄악으로 인해 어두워진 우리의 시력을 밝게 해주셔야 비로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부르심의 소망
“그가 여러분의 마음눈을 밝게 하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권능이 어떠한지 여러분으로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18~19절).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해서 우리 마음의 눈을 밝게 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마음은 단순히 피를 공급하는 심장이 아닙니다. 마음은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곳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도 눈이 있습니다.
시력은 좋은데 마음의 시력이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육신의 시력은 잃었지만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력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실 때 비로소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더욱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보고, 깊이 알게 되면 세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꿈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소망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강력한 믿음이겠습니까. 우리의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구원의 부르심과 사역으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어떤 모습의 부르심이든지 반드시 이뤄집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명입니다. 뒤집어서 설명하면 부르심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라고 하지 않고 ‘부르심의 소망’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확신이 무너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흔들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를 의심하며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확신은 그만큼 연약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부르심의 소망에 근거할 때 더 확실해집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확신보다 더 중요한 근거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을 경험한 사람도 죄에 빠지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부르심의 소망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업의 풍성함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 6).
하나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후회가 없고 취소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님 안에서 깨달으면 세상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담대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유업의 영광이 풍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업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물려줄 유업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지를 모른다면 어떨까요. 매우 안타까울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를 깨달아야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못한 하늘의 놀라운 유업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크신 능력
세 번째 깨달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살펴본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은 ‘역사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능력입니다. 또 영혼들을 돌이키고 믿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기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권능을 행하셔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고 하늘에 있는 그분 오른편에 앉히셔서 모든 권력과 권세와 권능과 주권과 이 세대뿐 아니라 오는 세대에서 일컫는 모든 이름들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20~22절).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단순히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사흘 동안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지옥의 권세,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승천하시고 하늘 보좌의 우편에 앉아 계시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할 뿐 아니라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가 약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이요, 유업의 풍성함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신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naver.com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