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의2 - 한 사람을 찾습니다
한 사람을 찾습니다
문봉주 대사 (외무부 본부대사)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탄이 주는 ‘나’만을 위해 달려가지만, 하나남의 한 사람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는 나라를 위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이 나라를 세우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부터 예수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인 하와를 주셨습니다. 아담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으로 하와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아담의 말보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말을 좇았습니다. 그 사건 이래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뱀, 즉 마귀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마귀가 주는 의식이 ‘나’라는 의식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도 농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플 때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으셔서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나를 벗어나서 우리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렇게 했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시고 그곳에 임재해 주십니다. 나를 회복시킨 하나님의 능력 둘째,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지, 성경 66권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배우고 묵상하고 말씀있는 곳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히 1:3)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입력하신 프로그램을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걸어왔을 때 그냥 슬쩍 듣고 외면하는 자는 말씀에서 벗어나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하늘에 연결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붙잡는 순간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그 소원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늘 그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소원을 내 안에 불어넣어 주십니다. 저는 제네바에서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말씀에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1년 반 동안 온누리교회에서 매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매일 술을 먹고 다녔는데 가던 길을 돌이켜서 말씀이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북경에 중국 공사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청년들과 ‘성경의 맥을 잡으라’는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위암4기라는 말기암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 계속되는 1년 동안의 항암주사를 맞는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말씀을 붙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하기 직전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찾아와 안아 주시면서 “이 고난이 축복의 시작임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기도에 ‘아멘’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 지 모르는데 이 고난이 무슨 축복의 시작이겠습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항암제를 맞는 고통 가운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성경구절을 외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펴서 두세번만 눈여겨 보면 말씀이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계속 떨어졌고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목소리로 1부 예배 끝나면 2시간 동안 장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오후예배 끝나면 청년들에게 2시간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중환자가 4시간 씩 1년 동안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병을 완전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나는 비움, 하나님은 채움 말씀을 붙들고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주시고, 더불어 우리가 기도하게 하십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내려놓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긴급했을때 상의했던 조카 롯도 내려놓았습니다. 비록 종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자기 아들인 이스마엘도 버리고 100세에 얻은 약속의 아들도 이삭도 버렸습니다. 그 존재들이 아브라함의 마음가운데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아끼고 의지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나씩 버리게 하십니다. 저는 뉴질랜드 대사로 있을때 방언을 받았습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감사애서 계속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자꾸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30여 년 저축한 저금을 가난한 이웃을 향해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참 힘들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한번은 대사로서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끼는 사람을 초청해서 골프를 치는 모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벽기도시간에 오늘 골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친구 사이도 당일 아침에 취소를 하면 민망한데 대사가 초청을 했는데 그날 아침에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 때 저는 ‘그래요, 하나님… 제가 깨지겠습니다. 대사의 직분이든 무엇이든 내려놓으라고 하신다면 내려놓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생각한 만큼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우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성전에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은 임재해 주시고, 영락없이 제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에 붙들리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에 붙들리면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면 예수 외에 어떤 은혜도 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내 안에서 절로 나오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내 것을 내려놓는 자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체험되는 자만이 진심으로 그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고백이 가능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저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언제 죽어도 관계없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더욱더 풍성해진 제 삶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내가 다 얻은 것도 아니요, 다 이룬 것도 아니요 오직 내 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을 하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드디어 그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께 사로잡힌 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 사로 잡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영원히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제가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를 내 안에서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문봉주 대사 (외무부 본부대사)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탄이 주는 ‘나’만을 위해 달려가지만, 하나남의 한 사람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는 나라를 위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이 나라를 세우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부터 예수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인 하와를 주셨습니다. 아담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으로 하와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아담의 말보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말을 좇았습니다. 그 사건 이래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뱀, 즉 마귀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마귀가 주는 의식이 ‘나’라는 의식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도 농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플 때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으셔서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나를 벗어나서 우리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렇게 했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시고 그곳에 임재해 주십니다. 나를 회복시킨 하나님의 능력 둘째,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지, 성경 66권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배우고 묵상하고 말씀있는 곳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히 1:3)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입력하신 프로그램을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걸어왔을 때 그냥 슬쩍 듣고 외면하는 자는 말씀에서 벗어나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하늘에 연결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붙잡는 순간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그 소원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늘 그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소원을 내 안에 불어넣어 주십니다. 저는 제네바에서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말씀에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1년 반 동안 온누리교회에서 매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매일 술을 먹고 다녔는데 가던 길을 돌이켜서 말씀이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북경에 중국 공사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청년들과 ‘성경의 맥을 잡으라’는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위암4기라는 말기암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 계속되는 1년 동안의 항암주사를 맞는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말씀을 붙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하기 직전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찾아와 안아 주시면서 “이 고난이 축복의 시작임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기도에 ‘아멘’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 지 모르는데 이 고난이 무슨 축복의 시작이겠습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항암제를 맞는 고통 가운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성경구절을 외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펴서 두세번만 눈여겨 보면 말씀이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계속 떨어졌고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목소리로 1부 예배 끝나면 2시간 동안 장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오후예배 끝나면 청년들에게 2시간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중환자가 4시간 씩 1년 동안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병을 완전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나는 비움, 하나님은 채움 말씀을 붙들고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주시고, 더불어 우리가 기도하게 하십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내려놓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긴급했을때 상의했던 조카 롯도 내려놓았습니다. 비록 종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자기 아들인 이스마엘도 버리고 100세에 얻은 약속의 아들도 이삭도 버렸습니다. 그 존재들이 아브라함의 마음가운데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아끼고 의지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나씩 버리게 하십니다. 저는 뉴질랜드 대사로 있을때 방언을 받았습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감사애서 계속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자꾸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30여 년 저축한 저금을 가난한 이웃을 향해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참 힘들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한번은 대사로서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끼는 사람을 초청해서 골프를 치는 모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벽기도시간에 오늘 골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친구 사이도 당일 아침에 취소를 하면 민망한데 대사가 초청을 했는데 그날 아침에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 때 저는 ‘그래요, 하나님… 제가 깨지겠습니다. 대사의 직분이든 무엇이든 내려놓으라고 하신다면 내려놓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생각한 만큼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우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성전에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은 임재해 주시고, 영락없이 제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에 붙들리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에 붙들리면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면 예수 외에 어떤 은혜도 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내 안에서 절로 나오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내 것을 내려놓는 자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체험되는 자만이 진심으로 그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고백이 가능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저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언제 죽어도 관계없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더욱더 풍성해진 제 삶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내가 다 얻은 것도 아니요, 다 이룬 것도 아니요 오직 내 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을 하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드디어 그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께 사로잡힌 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 사로 잡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영원히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제가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를 내 안에서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