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의6_ 큐티와 성령
>>> 라준석 목사 (온누리교회 총괄 수석)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큐티 시간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 생각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는 시간입니다.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은 성령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큐티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절을 보면 “성경의 모든 예언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나옵니다. 21절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는 해석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큐티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말씀을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6~13절 중 “만일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11절)”고 나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큐티 시간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 나를 향한 격려와 좋고 나쁨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는 시간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은 성령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닌 성령님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받는 하나님 말씀 성령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받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큐티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십니다. 큐티는 스스로 하겠다고 결심하기 힘들고, 큐티하는 자리에 가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우리는 큐티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큐티해야지’하고 결정하게 만드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큐티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큐티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둘째는 바쁜 일정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부족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러야 하면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아버지 장례식에 참여합니다. 결혼식이 있는 날은 아무리 바빠도 결혼식에 참여합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우선적으로 큐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큐티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해주십시오.”두 번째, 큐티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큐티를 통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게 하십니다. 큐티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큐티란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올 때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옵니다. 깨달음으로 옵니다. 어떠한 때는 충격과 찔림으로 옵니다. 명령, 결단으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큐티는 나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묵상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묵상하다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바다를 가르시며 40년 동안 만나를 내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옵니다. 사단은 나를 묵상하게 만들고 형편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큐티는 적용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적용에도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북 봉화에 가면 봉화 온누리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에 저희 교회 권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1997년에 첫 OMC에서 이러한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원래 미용실을 하던 분이었는데, 큐티를 하던 중 예레미야 32장 15절에 ‘집과 밭과 포도밭을 사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받고 권사님은 밭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큐티하면서 산이 있고 들판이 있고 구름기둥이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에서 본 곳을 찾아 전국을 다녔는데 봉화에 가서 자기가 본 땅과 동일한 땅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여호수아 17장 18절 큐티 말씀에 “비록 산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또 고민하는데 여호수아 18장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라는 말씀을 큐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샀습니다. 남편과 함께 내려가서 사과나무를 심고 재배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과수원에서 나는 사과가 전국 사과 품평회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군에서 전량수매해서 외국에 수출하는데 ‘최고의 과일’이라는 명칭을 받았습니다. 도매가가 한 박스에 12만 원이 넘습니다. 또 군수가 10억을 들여 산꼭대기까지 길을 내어줬습니다. 눈이 오면 올라갈 수 없으니까 모노레일을 깔았습니다. 산꼭대기 교회에는 30명이 모이는데 목사가 없습니다. 교회 올라가는 길에도 빨간 십자가를 줄줄이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큐티 말씀에 순종할 때 산꼭대기에 30명이 모이는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씀일 수 있는데 순종한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받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나눔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 마지막으로는 나눔입니다. 나눔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하용조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이 대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대화 중에 가슴을 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설교하기 위해 말씀을 읽지 않았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말씀을 읽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 때문에 살았습니다. 나를 살렸던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해주니 성도들이 나처럼 살았습니다. 그것이 제 설교입니다.” 살기 위해 말씀을 읽고, 그 감동이 된 말씀을 주일에 전하니 성도들도 살았다는 것입니다.큐티설교란 바로 큐티하는 사람이 하는 설교입니다. 전도설교도 전도하는 사람이 하는 설교입니다. 큐티하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꿈도 나누고 슬픔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시당할까 봐 부끄러워서, 욕먹을까 봐 두려워서 큐티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내가 깨달은 것을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목사든 전도사든 교사든 죽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받고 그 말씀에 자기가 감동받아야 합니다. 자신도 감동하지 않은 설교에 누가 감동합니까? CGNTV에는 수많은 설교영상이 있지만 제가 제일 감동 받는 영상은 제 설교 영상입니다. 저는 제 방에 틀어놓고 눈물을 흘리며 듣습니다. 저는 TV에 나와서 설교하는 제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자기가 감동을 받아야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감동 받고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