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8_ 말씀 묵상과 설교

>>>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담임) ‘역사의 암흑기는 설교의 암흑기 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설교가 없을 때 시대는 항상 어두웠습니다. 시대를 비추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 시대가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큐티는 설교 준비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큐티는 큐티 고유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큐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큐티는 설교의 중요한 마당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다 보면 설교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저 역시 강해설교를 할 때 주석을 많이 참고하기도 하지만 제가 큐티했던 노트를 들춰보면 주석 이상으로 훨씬 깊은 통찰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설교준비를 하기 전 단계의 묵상이 중요합니다. 20년 전만해도 큐티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면 신비주의 신앙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한국 기독교 안에 있었습니다. 물론 신비주의를 경계할 필요는 있지만 기독교에서‘신비’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기독교는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주님은 분명 요한복음 10장 말씀을 통해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양이라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저는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마리의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소홀히 할 때 설교도 인본주의적인 작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큐티가 중요하고, 묵상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사막에서 시작된 묵상운동  우선 기독교 역사 속에 있었던 고전적 묵상의 형태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고전적 묵상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묵상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를 기독교 학자들은 사막교부시대라고 일컫습니다. AD200년대 중간에 엔톤이라는 이집트의 교회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막이 두려워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사막에는 많은 귀신들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교회 지도자로서 일이 분주해지고 보니까 깊이 엎드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사막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이 사막도 다스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묵상을 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습니다. 얼마 지난 후 엔톤이 사막에서 오히려 얼굴에 빛이 나고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갔고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수도원이 되고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많은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네 가지 묵상  12세기 무렵에 묵상을 하는 구체적인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네 단계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큐티운동이 이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큐티운동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같은 기독교 역사의 강줄기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귀고(Guigo) 2세라는 수도원 원장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수도원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는 방법을 잘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 가운데서 사닥다리가 펼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닥다리의 단에는 아래에서부터 네 단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 단어는 ‘렉치오 디비나’였습니다. 거룩한 독서라는 뜻입니다. 성경읽기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메디타치오’였습니다. 묵상하기입니다. 세 번째 단어는 ‘오라치오’였습니다. 기도하기입니다. 네 번째 단어는 ‘콘템플라치오’였습니다. 이것을 가톨릭에서는 ‘관상’으로 번역합니다. 쉽게 말하면 ‘깊이 있게 바라보기’입니다. 침묵 속에서 깊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읽기 단계에서는 줄거리를 살펴봅니다. 묵상하기 단계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을 살핍니다. 모든 성경의 텍스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묵상에서는 이것을 연상시켜 주는 ‘거룩한 단어’를 붙듭니다. 기도하기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필요와 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기도문에 이러한 기도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마지막인 관상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새기는 것입니다.지금까지는 설교 작성 전 단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설교 작성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설교자는 청중들의 입장에서 본문을 바라보고 혼란을 주지 않는 설교를 작성해야 합니다.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묵상하는 설교 작성법  첫째, 본문에서 핵심 아이디어를 찾는 것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설교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것을 열쇠 문장이라고 합니다. 둘째, 설교의 아웃라인을 묵상하기입니다. 설교에서 아웃라인은 성도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설교 아웃라인을 작성하는 방법에는 본문 순서대로 아웃라인을 만드는 본문 순서형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아웃라인을 만드는 논리적 순서형이 있습니다. 또한 설교 아웃라인을 작성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대지에 초점을 맞추고 소지는 지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지는 결론과 연결하기 용이한 것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셋째, 서론과 적용 및 결론의 묵상입니다.  서론에서는 설교 본문의 배경을 창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본문의 주제를 매력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적용은 특히 많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설명과 적용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설교는 본문은 많은데 적용이 없고, 어떤 설교는 실감나긴 하지만 본문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설교가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능력 있는 설교는 본문과 적용이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제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성도들에게 본문과 비슷한 오늘날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설교의 핵심, 구속사적 결론 넷째, 구속사적 결론을 맺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의 결론을 맺을 때 항상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도전을 줄 것인가’라는 예언적 측면이고, 두 번째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 라는 제사장적 측면입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예언자인 동시에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설교의 결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사적 결론을 맺는 것입니다. 결론에서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으면 그것은 도덕적인 메시지로 전락해버립니다. ‘역사의 암흑기는 설교의 암흑기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설교가 없을 때 시대는 항상 어두웠습니다. 시대를 비추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 시대가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시대를 비추는 위대한 하나님의 설교자가 일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정리 차명권 부장 salt@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