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강의3 주권 – 데이비드 플랫 목사

 

데이비드 플랫 목사데이비드 플랫 목사

데이비드 플랫 목사

이곳에 계신 많은 사람 중에 지금은 웃고 있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아픔, 육체의 질병, 그 무엇이든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과의 대화 단절, 직장 안에서의 갈등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는 핍박을 당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각기 다른 문제들을 붙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믿음만 붙잡으십시오.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자녀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는 다릅니다. 교계 안팎에 신학적인 여러 가지 논지가 있습니다. ‘번영신학’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조금만 더 주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평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번영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눅 9:23~24).

여러분, 우리에게 번영을 주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눅 9:57).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머리를 둘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자고 쉴 곳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번영신학이 성도들의 마음을 꽉 잡고 있는 것을 볼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번영신학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소망을 갖되 소망이 진리 위에 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소망을 갖길 바랍니다. 그런 소망을 갖게 되면 예수님의 절대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번영신학의 열 가지 문제점에 대해 나열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갖고 있는 물질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부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보게 합니다. 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집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건강한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건강하고 돈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잘 곳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총애를 받지 못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저는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지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인 축복의 목적에 대해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축복하셨는지 목적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우리가 안락하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축복은 남에게 베풀고 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은 편안하게 하고 여러분은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공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면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주어 서로 공평하게 될 것입니다”(고후 8:13~14).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물질적인 부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망각하게 합니다. 건강한 것, 돈이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상당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젊은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무룩해져서 슬픈 표정을 짓고 떠나갔습니다. 그에게 재물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장애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의 경고를 들으십시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고 만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딤전 6:9).

성경은 부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지옥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부를 갖는 것을 즐겨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을 원하는 그 마음이 여러분의 삶을 멸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더 많이 오르라고 하지만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그런데 번영신학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부에 대한 착각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악하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변하는 부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번영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구약을 많이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땅과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한 민족을 택해 축복을 주셨다면 신약에서는 모든 민족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몸 자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의 한 구절이라도 순종하면 부를 주겠다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번영신학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왔던 하나님의 변화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는 내가 가진 것을 다 나누어주는 것을 잊고 많은 것으로 나를 채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만 쓰려 합니다. 번영신학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번영신학은 모든 사람을 다 덮어놓고 무시하고 살아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문제는 내가 가진 육체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좋아합니다. 저도 좋은 것이 좋습니다. 번영신학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님이 축복하셔서 더 주신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는데 번영신학은 절대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에 대해 전부를 걸고 투자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부를 이 땅에 축적하지 마십시오. 번영신학은 썩어 없어질 것에 투자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학벌을 잘 취득하고 좋은 배경의 자리에 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들은 불에 타버릴 것입니다. 500년 뒤에 이런 것들이 가치있겠습니까? 번영신학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축복을 그르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덟 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선물 주시는 분 위에 두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시는 이보다 선물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좋은데 하나님 자체에서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이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을 우상 삼아 숭배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진다해도 예수님을 놓친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번영신학은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홉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수단으로 하락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준다고 말하며 부를 취하고 건강해지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열심히 기도했는데 사랑하는 이가 낫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이것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분들에게 기도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수단입니다. 번영신학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마지막 열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허락하신 슬픔과 아픔과 질병의 목적을 희석시킵니다. 아픔과 어려움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일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번영신학은 아픔과 핍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욥기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다가와서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멋대로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기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인류 역사상 욥기 1장보다 더 참혹한 일들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죽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립니다. 그런데도 성경이 말하길 그는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합니다. 그때 또 다른 일들이 일어납니다. 건강을 잃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도 욥은 하나님을 욕한 적이 없습니다. 길고긴 40장에 걸친 아픔이 그에게 벌어집니다.

이 일들은 욥이 잘못해서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다가와 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번영신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욥기 42장을 보십시오.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주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 간구하오니 들어주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내가 여쭙겠으니 대답해 주십시오. 내가 주에 대해 지금까지 내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욥 42:1~6).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진 분이시며 우리의 아픔 가운데 함께하는 분이십니다. 지금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의 인생을 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참된 복음으로 위로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다면 잘 들으십시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련과 어려움은 언젠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기억해야 할 네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자체가 어려움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초반부에 보면 사탄이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욥기 전체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 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사탄이 절대 주관할 수 없습니다. 정말 좋은 소식 아닙니까? 오직 한분만이 우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험을 당할 때 절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목적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조금 더 견고하고 완벽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키우기 위해 주시는 아픔인 것입니다. 시련을 겪어야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믿기 원하십니다. 때로 시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욥은 그 아픔을 경험했지만 사탄과 하나님의 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욥기를 천국의 눈으로 보면 어떠할까요. 십만 명의 천사들이 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욥기 땅에 주저앉더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것을 보았을 때 하늘의 천사들은 기뻐 찬양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이 욥처럼 천국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단위를 넘어서 천국의 시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베푸시는 사랑을 의지하십시오. 정말 좋은 소식은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고통의 터널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죄와 아픔이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쓰여 있듯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참된 복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 따를 수 있는 복음입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