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2 복음의 능력 – 데이비드 플랫 목사
데이비드 플랫 목사(브룩힐즈교회 담임)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당신이 홀로 이 큰 예배당에 있습니다. 그리고 딱 한분이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당신은 예수님 옆에 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무릎을 맞대고 앉아있습니다. 아무도 없고 당신과 예수님 단둘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문제, 직장의 어려움, 그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수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녀를 허락해달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한 달 시간이 지나면서 왜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는가 고민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문득 하나님께서 2년이라는 시간을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낳지 못한다면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입양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답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째 아들을 카자흐스탄에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2주가 지나고 제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수년 동안 임신하지 못했는데 입양하고 나서 2주 뒤에 바로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임신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기대하지 않으려고 작정했습니다. 임신한지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밤,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제 9개월 됐는데 병원에 가긴 가야 할 것 같아. 그런데 너무 기대하지마.” 그때는 겨울이었고 굉장히 추웠습니다. 아내가 출산을 해야 하는데 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왠지 이 상황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 아내는 정말 작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간호사가 제게 와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와 제 아내가 드디어 서로 눈을 바라보며 이제는 기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출산했을 때 제가 아이를 받았습니다. 방에 들어가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썼습니다. 제 눈에 제 아들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저는 아이를 아내의 무릎에 앉혔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셨습니다.
그 경험 이후, 또 셋째를 갖고 싶었습니다. 1년, 2년, 3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에서 딸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제 아내가 다시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희 가정에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상황을 만드셨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위대한 분은 아버지가 없는 분에게 아버지가 되게 하십니다. 그분은 제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카자흐스탄, 중국에 가게 하시고 부모가 없는 아이를 데려와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미국에서도 입양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들을 볼 때 사람들은 저의 자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게 진짜 아들도 있냐고 묻습니다. 오직 육체에서 난 자녀만이 진짜 자녀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모두가 제 자녀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 자녀들의 부모들이 자녀가 입양된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습니다. 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 아내와 제가 아이들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계관에서만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됨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갈 4:4~7).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자녀삼기 전에 우리가 종노릇하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그들이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죄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에서도 종노릇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교회들의 문제도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으면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주님의 보좌로 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잘하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한다면, 성경을 매일 읽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해야지만 괜찮은 삶,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악 가운데 하나님을 뿌리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상황이야말로 영적으로 고아된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고아됨과 육체적으로 고아됨의 한 가지 큰 차이점은 육체적으로 고아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큰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도망을 간 것입니다. 어느 날 제 아들이 아내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은 그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주길 원했습니다. 중국에서 데려온 제 딸은 태어나자마자 상자에 담겨 버림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두 아들딸의 상황이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4장 4~7절 중 4절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4절).
얼마나 영광스러운 구절입니까. 카자흐스탄에서 아들을 입양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고 있을 때는 아직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일 년 동안 노력하며 입양과정을 겪었고 그 이후에 우리는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때가 찼을 때, 아들이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때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바로 비행기 티켓을 구했고 2월 15일에 아들을 만났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사랑 가운데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3~6).
제 평생에 읽은 글 중에 이보다 아름다운 글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땅의 기초가 세워지기도 전에, 태양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나무와 산들을 만들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한명 한명의 영혼을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입양된 아들딸로 맞이하기 위해 바라보신 것입니다. 입양하려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류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이 많은 절차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조건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절묘한 시간에 모든 조건을 갖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여려분, 온 세상에 고아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바른 마음을 가진 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버려져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노릇하며 재판관 앞에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때에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모든 필요조건을 다 갖추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와 고민을 내려놓고 오직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치 종노릇하듯 하나님을 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갈 4:7).
여러분 상속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심으로 우리의 미래를 바꾸셨습니다. 제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 됨에 부여되는 모든 축복을 그들은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하늘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상속자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그것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주님 안에서 온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만약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 여러분을 드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여러분이라면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가족이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아들을 입양하고 싶었던 이유도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기를 원합니다. 이 사랑에 대해 심오하게 생각해보십시오.
한국에도 수많은 고아원이 있는 것을 압니다. 엄마, 아빠를 부를 수 없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한국도 입양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혈통이라는 것이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하늘이 지명해주는 형통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문화를 존중함과 동시에 그것을 딛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입양할 때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닌 영광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모든 분들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 복음의 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때로는 성경으로 우리가 돌아갈 때 우리는 우리 문화를 거스르고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치있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했던 첫 질문의 대답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큰 예배당에서 홀로 예수님과 마주보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내뱉는 단어는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절대 제자는 이 사랑을 온전히 깨달을 때만 알게 되는 축복임을 믿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출발점을 기억하십시오.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입니다. 제자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