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차세대

차세대에게 들려주는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나님의 절친(切親) 아브라함

/곽상학 목사

(강동 온누리교회)

 

“진정한 친구, 절친을 사귀고 싶어요”라고말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 그렇다면 용기를 내야 해요. 그 친구에게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과감하게 열어젖히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용기 말이에요. 자신의 관심사, 취미, 감정, 시간을 아낌없이 공유해야 해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우정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친구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아 우정관계를 맺은 사람이 등장해요. 바로 아브라함이에요.“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주시지 아니하셨습니까?”(대하 20:7), “그러나 너 이스라엘, 내 종아, 내가선택한 야곱아, 내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들아”(사 41:8).

 

 

 

구약의 하나님으로부터 친구라는 호칭을듣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예요. 아무리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과 친구관계까지 맺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한 배를 탄 경험 때문이었어요.

 

 

 

우정(friendship)이라는 단어는 ‘ 친구(friend)와 같은 배(ship)를 탔다’ 는 어원을갖고 있어요.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한다’ 는 의미에요. 친구 간에 모든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때 진정한 우정이 형성되는 것인데 하나님과 아브라함에게는 남모를 감정과 경험이 공유되어있어요.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창22: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누가 봐도 너무 황당하고 잔인한 요구를 하고 계세요. 어떻게100세에 낳은 귀한 아들의 심장에 칼을 꽂을수 있단 말인가요? 이 끔찍한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을 해요. 처음 그 명령을 들었을 때아브라함은 아마 멘붕에 빠졌을 거예요. 몸부림치며 꼬박 밤을 지새웠을 테지만 아침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출발해요(창 22:3).

 

 

돌쇠 같은 하인 둘과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에 있는 그 산을 향하여 떠나요.그 산에 도착해서 아브라함은 손에 칼을 들고 이삭의 심장을 겨냥해요. 그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며 하나님이 두 번이나불러요(창 22:11). 아브라함의 거침없는 순종에 하나님도 다급하게 반응한 것이지요.아브라함은 쇼(show)가 아니라 진짜로 자기아들을 죽여서 바치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 진짜로 자기 아들을 죽인 매정한 아버지가 있어요. 그냥 아들도 아닌 독생자(獨生子)를 죽인 그 아버지는 바로 우리하나님이에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지나친사랑이 당신의 아들을 무참하게 희생시킨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요일 4:9).죄에 갇힌 인간을 죽음에서 건져 올리기위해 택한 유일한 방법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었어요. 죽어가는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상상해 보았나요? 십자가의 그날, 정오부터오후 3시까지 온 땅을 어둠이 뒤덮은 것은(마 27:45) 아버지 하나님의 슬픈 마음의 표현이었던 거예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내 하나님, 내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늘 향해 절규하는 외아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을 가장 잘공감한 이는 누구였을까요? 당신의 아들이져야 할 십자가를 놓고 고민하는 하나님 곁에서 그 아픈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이는 누구였을까요? 아브라함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이가 있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그 찢어지는 고통을 이미 경험했던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이 곁에 있었기에하나님은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같은 배를 타 본 경험이 있었고, 이 둘은 같은 감정과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이이기 때문에 우정을 나누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건 아닐까요?

 

 

 

예수님은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15:13)고 하시면서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나는 너희에게 내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었으니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다”(요 15:15)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절친 관계가 잘 유지되기 위해선 무엇이 요구될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공유할만한 우정이 우리 안에 있는지매일매일 점검해야 해요. 고통과 슬픔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과 기쁨까지모든 것을 공유했던 하나님의친구 아브라함처럼 말이죠.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