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차세대

진정한 희망의 샘(spring)

차세대에게 들려주는 알기 쉬운 성경 이야기

 

 

 

/곽상학 목사 (강동 온누리교회)

 

봄은 영어로 ‘ Spring’ 이에요. 참 예쁜 말인 것 같아요. 옹달샘 바위 틈새에서 퐁퐁 솟아나 오는 물방울이 시원하고, 겨우내 긴 잠을 자던 개구리가 얼음 녹는 소리에 놀라 ‘ 용수철(龍鬚鐵)’ 처럼 폴짝폴짝 튀어 오르죠. 우리말의 ‘ 봄’ 은 매우 관념적이고 철학적이에요. 봄의 어원을 살펴보면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품어온 생각을 알 수 있어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소멸된 것 같은 겨울을 겪어내고 새싹을 움틔우는 경이로운 새 생명을 보며‘ 보다’ 의 명사형인 ‘ 봄’ 을 끌고 왔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사람의 감각과 동작을 시각화하는 경향이 우리말만큼 뚜렷한 언어가 또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눈으로 봐요. 맡아보고, 먹어보고, 들어보고, 바라보고, 만져보고,느껴보고, 생각해 보고, 일을 보고, 장을 보고,대를 잇는 순간에는 자손을 본다고 해요. 많은 신체장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괴로운 것을 굳이 고르자면 시각장애라고 해요. 보지 못하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말일 거예요. 성경에는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을 치유하시는 장면이 여덟 번 등장해요(마 9:27, 12:22,15:30, 20:30, 21:14, 막 8:22, 10:46, 요 9:1). 그런데 요한복음 9장 1절 이하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치유 기사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치유와 조금 달라요. 재료를 사용하셨어요. 그 동안 예수님의 치료는 오직 말씀으로 하셨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 복잡하고 지저분한 방법을 사용하셨어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날 때부터 눈먼 자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고 하셨어요.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남달랐어요. 이 사건 이전에도 예수님이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고치신 적이 있기 때문에 소문이 퍼졌을 거예요. 그런데 굳이 “창세 이후 누구라도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요 9:32)고 고백해요. 당시 사람들은 선천적인 시각장애를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거지요.

 

 

 

 

왜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왜 그를 치료하실 때 눈에다 진흙을 바르는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손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창조주였던 것이지요. 이를 보여 주시기 위해 친히 진흙을 침에 이겨 선천적으로 결핍된 안구를 창조하시는 기적을 행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창조주이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이 있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신 부분이에요. 이 말씀은 태초에 사람을 만드셨던 장면과 정확히 일치해요.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어요(창 2:7). 사람이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사람은 다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 3:19)이라는 저주를 받은 신세가 되고 말지요. 이렇게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창조주가 오신 거예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새롭게 탄생할 부활공동체를 향하여 숨을 내쉰 것이에요. 흙에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처럼 초대교회를 준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신 것이지요.

 

 

 

 

태어나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고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 무엇이 었을까요? 바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이었을 거예요. 그는 예수님을 보았고 동시에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았어요. “나를 보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 12:45). 하나님을 ‘ 본’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 봄’의 인생인 것이죠. 실로암은 ‘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연못으로 BC 700년 경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에 대비해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에요. 다른 말로는 ‘왕의 연못’ 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그 왕의 연못에서 한 남자의 눈에서 진흙이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눈은 이제 마음껏 세상을 담을 거예요. 그동안 듣기만 하고 상상만 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이 남자는 남은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집중하며 살아갔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신(요 3:16) 사랑을 평생 노래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의 샘(spring)이기 때문이에요.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