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MC 기공예배 | 하용조 목사 설교 - “Acts29의 요람되길”
"Acts29의 요람 되길"
하용조 담임목사 이 자리에 서니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이 땅을 처음 밟게 된 것은 30여 년 전 주선애 권사님께서 한 권사님을 제게 소개시켜 주신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땅을 사서 기도와 눈물로 비전을 세웠던 정애숙 권사님입니다.정 권사님이 이 땅을 지키느라 피 눈물 나는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구치소까지 들어갔습니다. 인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모욕도 당했습니다. 이 땅 가져가려고 수없이 사탄의 시험이 많았습니다. 그 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남편 돌아가시고 혼자서 이 땅을 지키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차 장로님은 세무사로서 여기 세무 관계를 도우러 왔다가 이 땅이 하나님 땅임을 알고 10여년 동안 혼자 남아 싸웠습니다. 정 권사님이든 차 장로님이든 이 땅이 세상 사람에게 가면 안 된다, 세상의 목적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온누리교회가 이 땅을 어려울 때마다 조금씩 사들이고 보호하고 온누리교회가 이 땅을 지켜주기 시작했습니다. 지켜주다 보니까 오늘날 이렇게 선교훈련센터까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립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비전을 주셨는데 그 비전을 잉태한 장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버들캠프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풀러의 선교대학원팀과 함께 열흘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때 풀러의 유명한 신학자들이 와서 강의를 했는데 그 때 제가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연예인교회를 했고 간을 다쳐 사임하고 영국에 갔습니다. 의사가 목회포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연예인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간 이유는 한국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간 것입니다. 또 다른 비전의 장소는 영국에서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놀라운 사람과 단체를 만났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과 런던 바이블칼리지 그리고 WEC 선교단체였습니다. 불스트로드라고 하는 외곽 북쪽에 큰 저택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런 분위기의 땅이었습니다. 유명한 귀족이 쓰던 100명이 넘게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캐슬이었습니다. 그곳을 웩이 인수해서 훈련센터로 썼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선교사를 보낼 때는 선교훈련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교사를 보낼 때는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훈련시키는 선교훈련센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선교훈련센터라는 것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불스트로드의 캐슬은 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전장에서 상처투성이로 돌아오면 그곳에서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곳의 지하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떠나는 선교사들이 맡긴 짐들이 지하실에 빼곡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곳에는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짐들도 있었습니다. 50년전 30년전 떠날 때 짐을 맡겼는데 순교하거나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짐들이 고스란히 곰팡이가 설어 있었습니다. 그 지하실의 짐을 보는게 산 교육이었습니다. 선교는 소풍이 아니요 죽으러 가는 것이며, 순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줬습니다.또 그 곳의 한 건물 벽에는 23명의 사진이 붙어있었습니다. 순교자의 사진이었습니다. 저도 여기 선교센터가 다 지어지면 박승철 선교사님을 비롯해 순교자들의 기념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훈련생들이 이들을 보면서 각성하고 이들의 뒤를 쫓아 가는 것이 진정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저희는 돈이 없어서 쫓겨 다니면서 한칸 방을 빌려 살고 있었는데 훈련을 받은 후 이재환 선교사는 감비아로 가고 저는 서울로 왔습니다. 이후 저는 선교에 비전을 불태우고 이천만 비전을 받고 Acts29의 비전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저를 하와이 YM 코나로 부르셨습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었는데 그곳이 제게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선교센터가 코나같은 영적 센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교사들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 선교센터가 되어야합니다. 여기서 에너지와 용기, 희망을 다시 찾고 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천만 비전을 품은 온누리교회에 부족한 것이 두가지입니다. 선교훈련센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스피릿을 배우는 곳입니다. 또 필요한 것이 선교사들의 은퇴촌입니다. 나이들고 돈도 없어 아무도 환영하는 곳이 없을 때 그들에게 의탁할 수 있는 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들의 양적성장에 비해 선교사들의 수준이 아직 밑바닥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요람이 있어야 하고 이곳이 그 요람이 되길 원합니다. 사도행전의 정신을 우리가 입양했습니다. 그 정신의 핵심은 1장 8절입니다.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있으나 없으나, 기회가 되거나 없거나 주의 복음을 전하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헌신해주시고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의 꽃이 피는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하용조 담임목사 이 자리에 서니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이 땅을 처음 밟게 된 것은 30여 년 전 주선애 권사님께서 한 권사님을 제게 소개시켜 주신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땅을 사서 기도와 눈물로 비전을 세웠던 정애숙 권사님입니다.정 권사님이 이 땅을 지키느라 피 눈물 나는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구치소까지 들어갔습니다. 인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모욕도 당했습니다. 이 땅 가져가려고 수없이 사탄의 시험이 많았습니다. 그 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남편 돌아가시고 혼자서 이 땅을 지키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차 장로님은 세무사로서 여기 세무 관계를 도우러 왔다가 이 땅이 하나님 땅임을 알고 10여년 동안 혼자 남아 싸웠습니다. 정 권사님이든 차 장로님이든 이 땅이 세상 사람에게 가면 안 된다, 세상의 목적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온누리교회가 이 땅을 어려울 때마다 조금씩 사들이고 보호하고 온누리교회가 이 땅을 지켜주기 시작했습니다. 지켜주다 보니까 오늘날 이렇게 선교훈련센터까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립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비전을 주셨는데 그 비전을 잉태한 장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버들캠프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풀러의 선교대학원팀과 함께 열흘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때 풀러의 유명한 신학자들이 와서 강의를 했는데 그 때 제가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연예인교회를 했고 간을 다쳐 사임하고 영국에 갔습니다. 의사가 목회포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연예인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간 이유는 한국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간 것입니다. 또 다른 비전의 장소는 영국에서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놀라운 사람과 단체를 만났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과 런던 바이블칼리지 그리고 WEC 선교단체였습니다. 불스트로드라고 하는 외곽 북쪽에 큰 저택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런 분위기의 땅이었습니다. 유명한 귀족이 쓰던 100명이 넘게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캐슬이었습니다. 그곳을 웩이 인수해서 훈련센터로 썼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선교사를 보낼 때는 선교훈련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교사를 보낼 때는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훈련시키는 선교훈련센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선교훈련센터라는 것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불스트로드의 캐슬은 천국처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전장에서 상처투성이로 돌아오면 그곳에서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곳의 지하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떠나는 선교사들이 맡긴 짐들이 지하실에 빼곡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곳에는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짐들도 있었습니다. 50년전 30년전 떠날 때 짐을 맡겼는데 순교하거나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짐들이 고스란히 곰팡이가 설어 있었습니다. 그 지하실의 짐을 보는게 산 교육이었습니다. 선교는 소풍이 아니요 죽으러 가는 것이며, 순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줬습니다.또 그 곳의 한 건물 벽에는 23명의 사진이 붙어있었습니다. 순교자의 사진이었습니다. 저도 여기 선교센터가 다 지어지면 박승철 선교사님을 비롯해 순교자들의 기념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훈련생들이 이들을 보면서 각성하고 이들의 뒤를 쫓아 가는 것이 진정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저희는 돈이 없어서 쫓겨 다니면서 한칸 방을 빌려 살고 있었는데 훈련을 받은 후 이재환 선교사는 감비아로 가고 저는 서울로 왔습니다. 이후 저는 선교에 비전을 불태우고 이천만 비전을 받고 Acts29의 비전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저를 하와이 YM 코나로 부르셨습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었는데 그곳이 제게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선교센터가 코나같은 영적 센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교사들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 선교센터가 되어야합니다. 여기서 에너지와 용기, 희망을 다시 찾고 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천만 비전을 품은 온누리교회에 부족한 것이 두가지입니다. 선교훈련센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스피릿을 배우는 곳입니다. 또 필요한 것이 선교사들의 은퇴촌입니다. 나이들고 돈도 없어 아무도 환영하는 곳이 없을 때 그들에게 의탁할 수 있는 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들의 양적성장에 비해 선교사들의 수준이 아직 밑바닥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요람이 있어야 하고 이곳이 그 요람이 되길 원합니다. 사도행전의 정신을 우리가 입양했습니다. 그 정신의 핵심은 1장 8절입니다.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있으나 없으나, 기회가 되거나 없거나 주의 복음을 전하는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헌신해주시고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의 꽃이 피는 장소가 되길 원합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