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rica, ‘Wake-Up!’① “병든 자에게 쓸 데 있느니라”

케이프타운 안에 있는 흑인들 마을은 희망의 끈이 끊긴 세월이 오랫동안 흐른 곳이요, 체념의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흑인이나 백인들 모두가 다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하나님께는 모두 잃어버린 한 영혼들이었다.
22시간의 긴 비행 끝에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창을 통해 보이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무척 평온해 보였다. 지구의 남반구에 자리 잡고 있는 남아공은 사계가 한국과 정반대이다. 그동안 남부 아프리카 지역은 인종격리정책(Apartheid)과 지리적인 먼 거리로 인해 한국인 여행객이 별로 많지 않았다. 김성원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비행기를 다시 타야 했다.
하나님이 축복한 도시, ‘케이프타운’ 넓은 아프리카 황야를 가로 질러 도착한 케이프타운. 남아공의 발상지로서 ‘마더 시티’라고 불리기도 하고, ‘남아공의 유럽’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이 한 눈에 펼쳐진다. 웅장한 바다가 있고 눈을 돌리면 기이한 절벽이 둘러서 있다. 협곡 안 쪽 바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구불구불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맑고 상쾌한 공기, 푸른 바다, 남아공의 입법수도인 케이프타운은 유럽인들이 정년퇴임 이후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살기 좋은 곳이다. 바다에서 우뚝 솟아 오른 산 정상이 테이블처럼 편편한 테이블 마운틴이 도시 안에 버티고 섰다. 유럽을 닮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시드니, 샌프란시스코를 능가한다. 오른편으로는 라이언 해드(Lion Head)와 테이블 마운틴 정상이 멀리 바라보인다.
세계의 해안선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케이프 반도’. 해변에는 남국의 가로수와 멀리 아름다운 전원주택 마을이 고운 그림을 이루고 있다. 케이프타운 중앙에는 워터프론트라는 대형 쇼핑센터가 있다. 세계적인 규모이다. 각종 위락시설과 유럽에서 건너 온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물류와 사치가 호사스러운 곳이다. 남아공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축물과 박물관, 성곽, 교회, 고층빌딩, 상점, 공원들이 서로 어울러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항구 주변에는 수많은 여객선과 어선이 정박하고 있으며, 19세기의 건물을 새롭게 가꾼 쇼핑센터, 호텔, 노상 음식점들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맑고 파란 바다,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 아름다운 꽃, 귀여운 동물, 해풍을 즐기는 키 작은 관목, 바다 연안의 노을 파도, 깨끗한 거리… 케이프타운은 하나님이 축복한 도시였다. 낭만과 아름다움과 역사가 깃든 아름다운 도시였다.
흑인마을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김성원 선교사의 안내로 김창옥 전도사와 함께 흑인들 마을을 찾았다. 케이프타운은 케이프타운인데 분명 케이프타운이 아니었다. 중심가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포장도로 대신 진흙탕길이다. 양철지붕을 이어 만든 서, 너평 좁은 공간에서 두, 세 세대가 부대끼며 연명하고 있었다. 골목을 들어서며 만나는 중년 사내들이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말을 건네 왔다. 숨을 내쉴 때마다 술 냄새를 풍겼다. 알코올, 마약중독자, 에이즈 감염자가 지천에 깔려 있다. 성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희망의 끈이 끊긴 세월이 오랫동안 흐른 곳이요, 체념의 시간이 멈춘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흑인이나 백인들 모두가 다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하나님께는 모두 잃어버린 한 영혼들이었다. 오히려 어둠의 세력이 가득한 이곳, 그린파크 커뮤니티(Greenpark Community)를 사랑하셨다. 10여 년 전쯤, 캐나다 선교사를 이곳에 보내어 유치원 가건물을 건립하게 하셨다. ‘그린 파크’ 사역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유치원과 성경공부 사역에 김성원 선교사가 참여하면서 이 사역은 더욱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엘사비유치원 뷰우티 선생님이나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는 청년들의 표정이 밝았다. 교회 부속 유치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 역시 밝았다. 모두들 복음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다니엘 장로님을 만났다. 1달에 3만 끼를 유치원, 빈민지역, 노인들에게 급식하고 있었다. 'Soup Kitchen' 사역이다. 뉴 제네이레이션 패밀리 교회를 방문했다. 티오 목사가 흑인 젊은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양찰지붕 아래에서 드리는 주일예배가 뜨거웠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성도간의 교제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다. 감사와 회복과 감동과 나눔이 아름다운 예배였다. 성령의 뜨거운 임재가 있었다. 케이프타운이면서 결코 케이프타운이 아닌 이곳 흑인마을에도 ‘선교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복음의 열매’가 맺히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김성원 선교사가 영국인 선교사와 함께 교회지도자를 길러 내고 있는 TVCM 사역, 이스트 런던에 있는 시골마을 신학교를 찾았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승용차로 세 시간 이상을 달렸다. 끝없는 길을 달리다 보면 바다가 나오고, 바다를 달리다보면 목장이 보이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다. 드넓은 대륙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흑인들이 모여 사는 집단촌락에 도착하였다. 이곳 역시 에이즈, 빈곤,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에 찌든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 신학교가 세워져 있었다. 기숙사 시설까지 갖춘 아름다운 신학교였다.
마을을 돌다가 신학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며 하나님의 꿈을 키우고 있고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의 환한 얼굴을 보며 문득 그린 파크 유치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비록 남루한 옷을 거치고 맨 발로 다녔지만 그들의 표정 역시 해맑았다. 복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는 신학을 공부하며, 아이들은 그 신학공부를 통해 배출된 교회지도자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예수만이 흑인이 가진 그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유일한 소망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망봉으로 가는 길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희망봉을 향해 달린다. 굽이굽이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달린다. 절벽을 깎아 만든 해안도로를 따라 고급주택들이 가득하다. 바닷물이 철썩이는 바닷가부터 절벽 꼭대기까지 흰색 집이다. 집모양이 모두 다르다. 백인들의 별장이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유원지와 호화로운 별장 지대가 이어진다. 한 쪽에는 어부들이 멸치잡이 그물을 걷어와 손질하고 있고, 갈매기 떼는 모래사장을 배회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아굴리스 케이프(Cape Agulhas)이고, 희망봉(Cape of Good Hope)은 아프리카 남서쪽의 끝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가 계속 이어진다. 케이프 포인트 정문을 지나자 거센 풍랑으로 황량한 들판엔 키가 낮은 나무들이 한 쪽으로 쏠려 있다. 대륙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바닷물이 검푸르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서로 부딪혀서 멍이 들어 저렇게 검푸른 색이 되었다.
산허리를 돌아 희망봉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희망봉 진입로 입구에 ‘Cape Point'라고 선명하게 써진 표지판이 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뜨거워진다. 온 몸으로 전율이 느껴진다. 야트막한 산자락 언덕길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바닷바람 때문에 잡목들이 모두 땅에 엎드렸다. 바위산 등대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본다. 양 대양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절벽에 하얗게 부딪쳐 치솟고 있다.
희망봉에 올라섰다. 희망봉 정상은 바다 위로 2 백 미터 이상 탑처럼 서 있는 절벽이다. 그 정상에는 돔 형태의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에는 큼직한 둥그런 바위와 세계 주요도시를 가리키는 방향판이 놓여 있다. 그 밑으로는 여행자들이 새겨 놓은 이름들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감탄사만 연발한다. 마음이 저려오도록 푸른 바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떨칠 수 없다. 수평선 끝으로 까마득히 남극대륙이 보인다.
‘아파르헤이트’, 인종분리 정책이 남긴 깊은 상처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를 잡은 남아공은 한반도 6배에 이르는 다이아몬드와 황금의 나라이다. 1486년 포르투칼 바르롤로뮤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나라는 네델란드. 1652년에 동인도회사를 세우며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동양으로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이주해 온 네델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 보아들이었으므로 이들을 보아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기 원했다. 이들이 쓰던 네델란드어가 이곳 원주민 언어와 섞인 것이 오늘날의 아프리칸스어이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보아인과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보아전쟁이다. 1899년,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902년 남아프리카연방을 선포하며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15~19%에 불과한 백인이 절대 다수인 원주민, 유색인종을 지배하기 위하여 인종을 섞이지 않게 분리하는 ‘아파르헤이트’, 인종분리 정책을 시행하였다. 함께 살면서 차별하는 ‘인종차별’과는 근본이 달랐다.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국민회의를 중심으로 맹렬한 투쟁이 벌어졌다. 급기야 인종분리정책은 거두어지고 인종화합의 새로운 무대가 펼쳐졌다. 그러나 부유한 소수 백인과 가난한 다수 흑인간의 갈등의 늪은 메워지지 않았다. 나날이 실업, 범죄, 마약중독, 가난, 에이즈 감염의 문제가 급증하고 있다. 약한 자, 가지지 못한 자, 유색인종들의 가슴 속에는 깊은 상처가 쓴 뿌리로 뻗어나고 있었다.
‘TIM Africa’가 세워져야 한다
두 대양이 맞닥뜨리는 희망봉 정점에 서서 잠시 눈을 감는다. 엔꼬보(Encobo)에 3개 교회를 개척한 김성원 선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남아공은 문화, 경제, 정치, 교육, 군사력 등 모든 분야에서 분명히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합니다. 남부 아프리카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고급 일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케이프타운은 황금어장입니다. TIM Africa가 세워져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다. 희망봉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구원하는 ‘희망봉’이 되어야 한다. 조상숭배, 정령숭배에 열심인 기독교인들, 아직도 인종분리정책의 갈등에 고뇌하는 백인과 흑인들… 가장 살기 좋은 겉모습과는 달리 남아공은 오랜 세월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근원적인 치유와 회복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 아멘.

편집국장 장선철 장로
■ 희 망 봉

1488년 포르두칼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케이프 반도 남쪽 끝자락의 ‘케이프 포인트’(곶)를 발견하고 포르투갈로 되돌아가는 항로를 찾아냈다. 그가 이 지역을 ‘폭풍의 곶’이라고 불렸다. 1497년 포루투칼 왕 루와 2세가 ‘희망의 곶’으로 개칭하였다. 이 지역은 서쪽의 대서양과 동쪽의 인도양이 서로 마주 보고 합류하고 있어 바람이 세고 조류가 매우 세차서 항해하던 선박들이 이 위험한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희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양철 지붕을 이어 만든 서,너평 좁은 공간에서 두,세 세대가 부대끼며 연명하는 흑인 집단 이주촌에는 알코올, 마약중독자, 에이즈 감염자가 지천에 깔려 있다.

▲ 세계의 해안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프 반도에는 백인들만의 별장이 들어서 있다.

▲ 이스트런던에있는 신학교 기숙사. 흑인교회 리더십을 배출하고 있는 TVCM사역 본부이다.

▲ 희망봉 정상에는 세계 주요도시를 가리키는 방향판이 있다.

▲ 1달에 3만끼를 흑인 빈민지역에 급식하고 있는 ‘Soup Kitchen’사역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 맨발로 다니지만 예수를 영접한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맑다.

▲ 흑인 집단 이주촌에 있는 뉴 제네이레이션 패밀리 교회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교제가 풍성하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