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본문: 요한복음 15장 4~6절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놀라운 끈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가길 바랍니다. 산악인들에게 끈은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주는 생명줄입니다. 끈에 의해 서로가 붙들어주고 지켜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임마누엘로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야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사이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우리 사이는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말씀을 듣고 난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는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 납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곳에 같이 잠이 들고,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따르라는 것인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으로 오셨을 당시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걱정하신 것은 예수님이 계실 때와 부활 승천할 때 예수님과의 관계가 달라질까봐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한 다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을 때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나를 따라왔지만 내가 성령으로 올 것인데 그때 지금 나와 너와의 관계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단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오늘날 우리도 그 당시의 제자들과 같은 상황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예수님을 사모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속죄 주’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권세도 믿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 또한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너무 낯설게 여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고 해놓고 어떻게 그렇게 싸울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계신다고 믿는 것 자체가 대부분 지식뿐이지 실제로는 잘 모릅니다.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먼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가 속죄 주이신 예수님은 잘 믿지만 임마누엘 예수님에 대해서는 들어서 아는 정도지 너무나 모릅니다.

예수님과의 친밀감에 대해서 모릅니다.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 뵈면 대부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될지는 몰랐습니다’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신다고 믿는다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모를 수가 있을까요?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과의 친밀함에 대해서 너무나 생소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그때부터 우리 삶이 통째로 바뀌게 됩니다. 두려움, 염려 없이 살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발견하십시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내가 참으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 곧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빌 3:7~9).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게 유익하던 돈, 세상 명예, 성공, 건강 이런 것들을 갖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지금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유익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배설물처럼 버렸다는 것은 아주 쓸데없고 하찮은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내가 원했고 가졌던 무언가를 억지로 버렸다는 것도 대단합니다. 그냥 버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배설물처럼 여겼다는 것은 완전히 예수님 안에 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만큼 놀라운 존재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상 유익한 것을 모두 배설물처럼 버려야하는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예수님 자체가 다 버릴 수 있을 만큼 놀랍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유익하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예수님은 놀라우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냥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안에서 발견되기 원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행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를 바르게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지를 점검해야합니다.

우리가 불신자에게 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합니까? 그것이 바로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회복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은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도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왜 그런 것일까요? 행복의 조건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에 걸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에게 행복의 기대를 걸지 마십시오. 많은 젊은이들은 남편에게 행복의 조건을 찾고 기대며 결혼을 합니다. 결혼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해서 결혼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를 유일하게 행복하게 해줄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결혼은 행복을 주는 조건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 행복을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기 원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순종하고 남편은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누리는 이 엄청난 축복을 작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으면 예수님은 나를 통해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됨

 

예수님이 포도나무시고 나는 가지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관계가 되면 우리 안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원수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예수님과 친밀함 가운데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놀라운 관계로 믿게 되면 교우들과의 관계도 모두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면 다른 지체를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하나 됨’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왜 지치고 낙심하고 무너집니까? 가정에서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 직장, 교회 생활 중에 시험에 빠지고 무너집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 안에 예수님께서 온전히 거하시지 아니하면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리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한 이유는 주님 안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을 바꿔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 무거운 기도제목의 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능히 감당케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 나라, 열방, 한국교회, 개인, 중보할 자들을  위해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 기도하면 오늘이 하나님께 가장 황홀한 날이 될 것입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