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나이는 들어도 열정은 늙지 않는다 – 농어촌선교팀을 지키고 있는 권사 삼총사

정정순 조용선 김대임 권사 (1)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지 다녀온 교회도 기억 못해.”
구수한 말투와 서글서글한 인상, 얼굴만 봐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냥 품에 안기고 싶은 할머니들이다. 그녀들은 농어촌선교회를 지키고 있는 권사 삼총사다. 40대에 시작한 사역이 올해로 15년째다. 농어촌선교팀과 동고동락하며 보낸 세월만큼 참 많이 변했다. 이제는 봉사하러 다녀온 교회를 기억하기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사역에 대한 열정이다. 그것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나이는 들어도 열정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 정지은 jji@onnuri.org
 

권사 삼총사, 농어촌선교팀을 만나다

 

“어려운 농어촌교회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마음이 쓰여요.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그 마음이 지금껏 농어촌선교회를 섬기게 한 것 같아요.”
농어촌선교회를 지키는 권사 삼총사는 정정순 권사(71세, 이수공동체), 조용선 권사(75세, 동대문중랑공동체), 김대임 권사(68세, 이수공동체)다. 그녀들은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에서 오랫동안 섬겼다. 개인사정으로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한 양정열 권사와 이복순 권사까지 합치면 오총사다. 그들이 바로 농어촌선교회의 산 역사다.
권사 삼총사는 이제 젊었을 때처럼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역할이 없어지거나 축소된 것이 아니다. 사역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뒤에서 농어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팀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주 온누리 장터에서 농어촌교회가 생산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일에도 두 손을 걷어붙였다. 도농브릿지사역(해당지역 먹거리 판매)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권사 삼총사는 농어촌선교팀원들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농어촌선교팀 출범부터 함께해온 정정순 권사는 자신이 농촌 출신으로 농어촌교회의 열악한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농어촌교회를 섬기는 사역에 몸담았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인 정 권사가 처음 다니던 교회도 시골의 작은 교회였다. 정 권사는 온누리교회에 농어촌선교팀이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모교회를 생각하며 농어촌교회를 섬기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역이 올해로 벌써 15년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어요. 그 시간 동안 함께 섬긴 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좋아요. 그래서 농어촌선교팀을 떠날 수 없어요.”

 

“아프다가도 봉사 간다면 힘이 나요”

 

조용선 권사는 권사 삼총사 중 맏언니다. 조 권사는 2005년에 농어촌선교팀에 합류했다. 10년 전 일이다.
그녀는 1990년부터 온누리교회에 출석했다. 당시 실버찬양단으로 섬기고 있던 그녀가 농어촌선교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이 60이 넘어가자 마땅히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농어촌선교팀에 가면 다른 권사님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관심이 있는 사역을 하면서 권사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농어촌선교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올해 75세인 조용선 권사는 평소에 몸이 아프다가도 농어촌교회로 봉사 간다고 하면 힘이 벌떡 난다고 한다.
“지난달 25일에도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한 교회를 다녀왔어요.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지만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더라고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분명해요.”

 

“더 섬겨주지 못해 미안해요”

 

온누리교회 직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하고 농어촌선교팀에 합류한 이도 있다. 주인공은 김대임 권사다. 그녀는 1989년부터 온누리교회 직원으로 섬겼다. 어느 날 주방에서 일하다 농어촌교회를 섬길 것을 결단했다.
“농어촌교회에서 보내온 곡식들을 보는데 갑자기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농촌 출신인 것도 영향이 있었어요. 2000년에 정년퇴직 하고 곧바로 농어촌선교팀에 합류했어요.”
김 권사에게 15년 동안 섬김에 대한 소회를 물었더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특히 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은 그동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그저 거들었을 뿐이라고 소회 밝히는 것을 주저했다.
“나이가 많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에 비해 못하는 것이 많아요. 농어촌선교팀이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앉을 자리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염려가 되요. 팀원들을 더 열심히 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에요.”

 

농어촌교회를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 

 

4년 전에 권사 삼총사가 충청북도 괴산으로 아웃리치를 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젊은 목회자를 만났다. 그 젊은 목회자는 아이들에게 큐티와 일대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회에는 중고등학생이 30여 명 있었다. 그중 한 여고생이 손을 들더니 농어촌선교팀에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오셨죠? 도시교회는 농어촌교회를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골에 계신 목사님들이 부족해서 여기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분들도 서울에서 충분히 목회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농어촌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은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도시교회는 농어촌교회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농어촌선교팀 모두가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 여고생의 말 한 마디가 가슴을 때렸다.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쉬지 말고 달려가 섬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라북도의 작은 교회를 섬기러 갔을 때였다. 그 교회에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농어촌교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교회는 달랐다,  조부모 손에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대부분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이들을 양육하고, 어르신들을 섬기는 목회자와 사모가 참 귀했다. 농어촌교회에는 80세가 넘은 어르신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농어촌선교팀이 찾아갔을 때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커피를 타주고, 섬겨 주었다. 7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식사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짐했다. 주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농어촌선교팀에서 섬기기로.
“농어촌교회 목사님들도 서울에서 목회하고 싶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농어촌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들을 위해 더 기도하게 됩니다.”

 

함께 농어촌교회를 섬깁시다! 

 

“권사님, 지금도 농어촌선교팀에서 봉사해?”
사람들이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부스에 있는 권사 삼총사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권사 삼총사에게는 작은 기쁨이다. 권사 삼총사는 농어촌선교팀을 화목한 팀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이 오랫동안 한 팀에서 섬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을 분위기로 꼽았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가족처럼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고 입이 닳도록 자랑했다. 또 김동필 팀장과 구자엽 총무의 섬김도 활력소라고 했다. 나이 든 권사와 장로들은 부모처럼 섬기고, 젊은 성도들을 친구와 자녀처럼 대하는 그 리더십 덕분에 팀 분위기가 더 좋다고 했다.
농어촌선교팀에서는 동역할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다. 매월 현장방문사역과 아웃리치, 주일 도농브릿지사역, 중보기도 등으로 농어촌교회를 섬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성도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권사 삼총사도 동역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우애, 섬김, 사랑이 넘치는 농어촌선교팀에서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문의: 구자엽 총무(010-4286-0078)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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