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친구 같고, 삼촌 같은 교사”
서빙고 꿈사랑부 열혈교사 권혁룡, 소병문 성도
서빙고 꿈사랑부는 6~13세 장애 아동들을 위한 예배공동체다. 꿈사랑부에 가면 천사들을 만날 수 있다.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열정적으로 예배하는 천사들의 합창도 들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천국잔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혼자서는 제대로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해낼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바로 교사들의 헌신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꿈사랑부 교사 권혁룡 성도와 소병문 성도를 만났다. 인터뷰 요청에 겸연쩍어 하면서 “아이들에게 친구 같고, 삼촌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을 뿐”이라며 웃는다. 그들의 미소와 꿈사랑부 아이들의 미소가 어쩜 그렇게 닮았을까.
/ 정지은 기자
온누리교회는 매년 하반기에 차세대 교사를 모집한다. 이때 장애인 부서도 함께 교사를 모집한다. 권혁룡 성도는 예배 시간에 상영된 교사모집 영상을 보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차세대 교사로 지원하려던 그는 장애인 자녀 세 명을 키우는 한 성도의 모습을 보고 꿈사랑부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꿈사랑부를 섬긴지 올해로 2년째다. 벌써 소년부 팀장까지 맡았다. 그가 꿈사랑부를 이처럼 열심히 섬기게 된 것은 처음 교사가 됐을 때 당시 팀장에게 들은 말 한마디 때문이다.
“선생님, 지금은 이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시겠죠? 한두 달 뒤면 이 아이들에게 푹 빠질 거예요.”
그는 꿈사랑부 아이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팀장의 말대로 그는 꿈사랑부 아이들에게 푹 빠졌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면서 무너진 영혼과 마음이 꿈사랑부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회복되었다. 꿈사랑부 아이들의 순수함에 매료되었다. 그 순수함 앞에 서면 작아졌다.
그에게는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다. 지원이라는 아이다. 지원이도 지원이지만 그의 부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사실 그의 큰 애도 장애가 있다. 아이의 장애 때문에 움츠려들고, 숨으려 했다. 그런 그가 지원이의 부모에게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저희보다 더 힘드실 거예요. 저희는 아이가 날 때부터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생님은 중간에 아셨잖아요.”
전화심방을 하던 중에 지원이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에 위로가 찾아왔다. 지원이 부모님이 더 아팠을 텐데 남을 위로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 투정 부리던 모습이 떠올라 창피하기도 했다.
“교사 1~2년 할 거였으면 여기 안 왔어요.”
그가 처음 교사 리트릿 갔을 때 한 말이다. 그는 10년 이상 꿈사랑부를 섬기는 교사가 되고 싶다. 꿈사랑부 아이들에게 아빠, 친구, 형, 삼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의 소망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런 교사로 남고 싶다고 했다.
“꿈사랑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요. 같은 생각과 마음. 사랑을 품은 선생님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지요. 꿈사랑부 아이들에게 그 생각과 마음, 사랑을 전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꿈사랑부는 에너지 드링크
권혁룡 성도와 함께 꿈사랑부에서 열심히 섬기기로 소문난 교사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소병문 성도다. 그는 2003년부터 꿈사랑부(당시 사랑부)를 섬겼다. 대학 때부터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군대를 전역하고 양재 온누리교회 청년부에서 장애인사역부서를 섬기다 2003년 서빙고 사랑부에 왔다. 2007년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잠시 교사 생활을 쉬었다. 쉬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돌아오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심히 섬기는 교사로 소문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보통 꿈사랑부 교사를 하다 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단 한가지다.
“꿈사랑부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요.”
그는 꿈사랑부 아이들을 통해 평안을 얻는다. 그에게 꿈사랑부 아이들은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을 친조카처럼 생각한다. 꿈사랑부 아이들을 섬기다 보면 어려움이 많다. 의사소통조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했다. 바로 그것이 꿈사랑부 아이들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꿈사랑부 교사로 합류하자마자 중증장애인 아이들을 맡았다. 당시에도 남자 교사가 많지 않았다. 여자 교사들은 남자 교사들에 비해 아이들을 다룰 물리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자인 그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맡았다. 공격성이 있는 학생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평안을 얻기 때문이었다. 꿈사랑부 아이들과 있다 보면 사회생활 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불안이 사라졌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사람들을 순수하게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평안을 느꼈다. 그토록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꿈사랑부는 그에게 에너지 드링크 같은 곳이다. 그만큼 많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울 때도 있었다. 아이들과 캠프를 갈 때가 특히 힘들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달래려면 뜬 눈으로 밤을 새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아이들과의 친밀감을 눈으로 확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유년부에서 초등부로 올라갈 때면 아쉽지만 그들의 성장이 반갑고 대견스럽다. 부서를 이동한 아이들이 알아보고 인사해줄 때면 살맛이 난다.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꿈사랑부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꿈사랑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예배하고, 교회생활 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15년, 20년 이상 교사로 섬기면서 꿈사랑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 서빙고 꿈사랑부(미취학~초등 6학년)
주일 오전 9시 신관 302호
문의: 정계희 팀장 010-7727-8347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