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가정의달 기획 3_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경쟁보다는 협동, 기적을 만드는 인내와 작은 노력 필요
이기는 법과 지는 법, 밥상머리에서 사랑과 격려 연습해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말이다. 그만큼 가정의 화목은 중요하다. 그 어떤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요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는 정치도, 경제도 아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 가장 심각하고 긴급한 문제다. 가정은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자녀들이 먹고, 숨 쉬고, 느끼고, 배우는 공간이다. 전문가들은 “깨어진 가정에서 깨어진 인격이 나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모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성경에서도 가정의 화목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다투기 좋아하고 쉽게 화내는 아내와 사느니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잠 21:19),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편집자주

 

화목(harmony)의 근원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을 근원적 화목, 혹은 실존적 화목이라고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다면 그 누구와 화목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고자 할 때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한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화목은 적절한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화목을 경험해 본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가정은 화목을 경험하는 장(場)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가정이 안전과 화목을 보장해주는 신앙의 울타리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다시 가정을 사랑을 실천하는 화목의 장으로 만들어야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기독교 교육적인 입장에서 네 가지 화목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 경쟁보다 화목을 추구하는 교육

 

화목은 언제 깨지는가? 화목은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지는 어떤 상태이다. 우리는 조화와 어우러짐이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평강을 느낀다. 화목을 이루는 데는 평생이 걸려도,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화목이 깨지는 곳에는 대개 ‘경쟁’이 있다. 물론 선한 경쟁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키고, 개인을 성숙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경쟁은 금세 관계를 망가뜨린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사교육에 자리를 빼앗기는 이유는 학교에서조차 경쟁 위주의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학교에서도 경쟁을 조장해 성적순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를 우선시 한다면 족집게처럼 답을 집어주는 학원의 일등교사에게 의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많은 우리 자녀들이 학교가 끝나고 다시 학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곳에서 경쟁적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적지 않은 수업료를 따로 내면서까지 말이다.
핀란드 공교육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 그들은 학교 재정의 상당한 부분을 열등생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을 비교적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과 팀을 이루게 해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방과 후 모임을 주선한다. 공부를 수월하게 하는 이들이 잘 못하는 친구를 돕게 한다.
“과외 선생은 최고의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오히려 중간 정도 되는 선생님이 제격”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아주 잘한 최우등생들은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한다. 과외 수업을 할 때도 “이거? 쉬워. 아주 쉬워. 그냥 시간 내서 풀면 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다가 온갖 노력 끝에 중위권 대학을 들어간 과외 선생의 말은 다르다. “아, 이거 어렵지. 나도 어렵더라. 근데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궁리하다 보면 푸는 방법이 있더라고”하면서 공부를 어려워하는 학생에게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가정교사에게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학생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의 위로를 주고, 한 단계씩 같이 걸어 올라가며 공부를 시키는 편이 높은 곳에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교육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핀란드의 공교육으로 돌아가 보자. 결국 핀란드는 학교교육의 목표를 소수의 최우등생을 키워내는 것에 두지 않는다. 열등한 학생들을 또래 학생들이 도움으로써 전체 학급의 평균 점수가 올라가게 하는 데 목표가 있다. 그 결과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고, 수학능력도 뛰어난 국가가 되었다.
가끔 중고등학교 교문에 ‘OOO, 일류 OO대학에 합격’ 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을 보곤 한다. 사실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을 통해 학교의 수준을 홍보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일류대학 입학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수많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메시지만 주는 것은 아닐까? 왜 학교는 이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특정 대학 몇 개에 합격한 사실을 지나치게 광고하는 일은 참으로 비교육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경쟁을 넘어서 모두가 화목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부는 잘 할 수도, 잘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핀란드처럼 우등생이 열등생(이런 표현을 쓰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을 도와주다가 서로 배우고, 협동하고, 궁극적으로 화목을 이루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상생하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길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둘. 프로방스의 기적도 작은 노력에서부터

 

프랑스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장 지오노라는 사람이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는 대지와 인간이 합일을 이룬 작지만 위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단 한 사람의 외로운 노력으로 본래 황무지였던 프로방스가 거대한 숲으로 변화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본래 프로방스 지역은 숲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황량함만 있던 곳이었다. 야생 라벤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황무지였다. 그곳이 한 순간에 변화된 것이 아니다.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땅에 구멍을 내고 작은 도토리 열매를 그 구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백 개의 도토리를 넣으면 반만 살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반타작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작은 도토리가 자라서 큰 떡갈나무가 되려면 적어도 삼십년을 기다려야 한다. 2만 그루의 떡갈나무를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은 1910년부터 4만 개의 도토리를 땅에 심어야 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땅에 묻어놓은 도토리를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열매만 쏙 빼먹곤 했다. 그에게 그 일은 분명 환란이었다.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
다람쥐가 와서 도토리를 먹으면서 뱉어놓은 침과 배설물이 다른 도토리들을 자라게 했다. 하나의 도토리가 없어지는 일이 다른 도토리들에게는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당장은 힘들어도 환란 중에 즐거워하고, 노력하고, 기다렸다. 인내는 사람을 만들어 간다. 인내는 멀지 않은 미래에 보게 될 커다란 떡갈나무에 대한 소망을 품게 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환난→인내→연단→소망’의 공식을 잘 설명해주는 인생 공식이다. 장 지오노가 쓴 이 작은 책은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 밭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었다. 황무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도토리를 심고, 사랑으로 가꾸고, 인내하면서 그 작은 열매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황무지는 비옥한 땅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희망과 행복을 노래한다. 이제 프로방스를 황무지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프랑스 남부지역을 여행하는 이들은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한다. 우리나라에도 프로방스라는 지명을 따서 생긴 식당만 수백 개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작은 노력에서 비롯됐다.
화목을 말하는 사람은 장 지오노의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키워내기 위해 땅을 사랑하고, 공기를 사랑하고, 도토리를 사랑하고, 그것을 자식 다루듯이 사랑할 때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창출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사랑을 갈구한다. 장 지오노는 사랑하는 나무들과 대화하면서 그 나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냈다. 나무들도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하고, 때로는 소리 지르고 환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오노는 사람과 나무는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모두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고, 그 가운데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화목을 이루는 프로방스의 비밀을 터득하게 되면 모두가 화목하게 된다. 아름다운 프로방스도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한다. 조화로운 삶, 화목한 삶, 나와 네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셋. 게이츠가 게이츠에게

 

세계 최고의 갑부 가운데 한 명인 빌 게이츠 부부가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을 보면,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는 18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테드(TED) 강연에 참석해 자녀 양육법을 공개했다. 게이츠 부부는 자신의 두 딸과 아들에게 부모의 유산없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펼쳐가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부모의 재산보다 좋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게이츠 부부는 “(유산에 대해) 아무 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의미가 있으며 중요하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2014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

 

최근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게이츠가 게이츠에게>라는 책을 썼다. 이제는 억만장자가 된 아들 게이츠에게 어릴 때 준 교훈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빌 게이츠의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가 전하는 삶과 자녀 교육에 관한 체험적 교훈이다. 자신의 팔십 평생을 돌아보며 쓴 자녀 교육에 대한 회고록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내 메리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아들 빌 게이츠 등 가족들과의 소중했던 추억담과 함께 게이츠 집안의 자녀 교육 원칙을 소개하고 있다. 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나눔과 봉사의 삶을 실천했던 게이츠 가족을 비롯한 여러 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할 소중한 삶의 가치와 교훈을 이야기한다. 빌 게이츠 시니어는 책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함께’라는 이름으로 하나이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서 여러 가지 교훈을 이야기 하는데 그중 인상 깊은 세 가지 교훈을 소개한다.
첫째, 과감하게 나서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웃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늘 관심을 가지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나서는 삶의 태도는 진정한 관용을 배우는 것이다. 관용이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받아들이는 이해와 배려를 의미한다. 셋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는 법과 물러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자신을 이기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다.
화목이란 결국 ‘같이 살아가는 동행’ 아닐까?

 

넷. 밥상머리에서 시작되는 화목

 

요즘 밥상머리에서 식사를 통한 만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이런 삶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 서양 사람들이 밥상머리에서 만남을 시작하는 일이 잦아진다고 한다. 어른이고 아이고 밥을 먹어야 뇌가 작동하고 발달하게 된다. 그리고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삶을 풍성하게 하고, 힘을 불어넣어 준다. 최근 뇌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연구결과를 봐도 그렇다. 빈민가에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은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가 없는 뇌발달 영양결핍에 걸려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한다.
밥상머리에서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그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일으키는 힘을 제공해주는 ‘격려’라는 비타민이다. 이 격려 비타민은 삶을 어루만지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격려는 관심 밖으로 내몰리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연약함과 무의미함’에서 해방시켜 준다.
캐빈 밀러의 <격려>는 이런 의미에서 생수 같은 신선함을 준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스크린에서 만났던 생명력 없는 얼굴들이 아니다. 실제 입냄새와 땀냄새가 나는 사람을 자신의 면전에서 대할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 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면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주변 사람들을 손님으로 보지 않고 식구로 보고 다가가 “참 멋진 모자를 쓰셨네요.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비결은 밥상머리에 있다. 격려를 실천하고 연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주일에 몇 번 밥상머리에서 가족들을 대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현대인들이 많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라도 동료들끼리 격려를 주고받는 것은 어떨까. 직장 동료를 식구로 대해야 한다. “오늘 옷 색감이 아주 좋은데요? 제 기분까지 행복해집니다”라는 간단한 격려 한 마디가 우리를 살게 한다. 나는 “목사님, 오늘 말씀 정말 재미있었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전에는 은혜 받았다고 많이 말을 했으나, 요즘 세대는 재미있다는 표현이 예전의 은혜 받았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요즘은 감성세대인가보다. 격려는 거룩한 관심을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통로가 된다.
경쟁보다는 힘들어하는 이들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화목의 교육현장으로 만들고, 시간이 걸려도 작은 나무를 키워내려는 노력을 했던 장 지오노처럼 식물 나무와 인간 나무를 심고, 게이츠처럼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이기기도, 지기도 하는 인생의 평범한 진리를 배우게 하고, 밥상머리에서부터 사랑과 격려를 연습하고 실천하게 함으로써 이 땅에 진정한 화목의 나무가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김도일교수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