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온누리교회 사랑부 27주년, 장애인과 함께한 사람들 – 장애인과 함께 울고 웃은 김요성 목사 가족

김영선 김요성 박인숙 (2)

(김영선 교사(좌), 김요성 목사(가운데), 박인숙 사모)

 

장애인과 함께한 사람들

장애인과 함께 울고 웃은 김요성 목사 가족

남편, 아내, 남동생, 여동생 모두 사랑부 출신

 

 

부천 온누리교회 김요성 목사 가족은 장애인 부서에서 유명인사다. 그들은 1994년부터 사랑부와 함께 울고 웃었다. 온누리교회 사랑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남들보다 먼저 구슬땀 흘린 초창기 멤버다. 김요성 목사, 그의 아내 박인숙 사모, 동생 김영선, 김미선 성도까지 온 가족이 장애인을 섬기는데 헌신했다. 그 섬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보석 같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김요성 목사와 그의 동생 김영선 성도(예수사랑부 교사)를 만나 장애인을 섬기면서 받은 은혜를 들어보았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ei.org

 

 

“어느 날 차세대 예배에 장애인 아이가 하나 왔어요. 그 아이만을 위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온누리교회 사랑부의 시작이었어요. 그때부터 하나둘씩 장애인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을 섬기는 교사들도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온누리교회 사랑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김요성 목사는 1994년 사랑부에 왔다. 아내 박인숙 사모가 사랑부 교사였는데 당시 사랑부에 찬양팀원이 턱없이 부족하자 김요성 목사에게 찬양팀을 섬겨주지 않겠냐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 목사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사랑부 찬양팀 교사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 2003년에 사랑부 전도사가 되었다.

김요성 목사는 오랫동안 사랑부를 섬기면서 가장 감사한 일을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라고 꼽았다. 물론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김 목사는 사랑부를 섬기면서 유독 자신에게 도전을 주는 귀한 교사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김 목사에게 큰 도전을 줬던 교사들 중에는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 교사들은 지금도 모잠비크, 필리핀, 이스라엘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김 목사는 그들과 함께 동역하면서 낮아지고, 더 낮아질 수 있는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더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도 했다. 지금 사랑부 교사들도 그 마음그대로 섬기고 있다고 칭찬했다.

 

훈이 가출사건

 

사랑부를 섬기면서 잊지 못할 일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훈이(가명) 가출사건’이다. 훈이는 부모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집을 나갔다. 일산에 살던 훈이가 집을 나가면 어김없이 사랑부 교사들에게 단체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 훈이가 집을 나가서 부모님이 찾고 계십니다.”

문자 메시지가 온 시간은 대부분 저녁이었다.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랑부 교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퇴근 후에 지하철을 탔다. CCTV를 확인하고, 일산에서부터 서울로 오는 지하철을 모두 뒤졌다.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었다. 김 목사는 그 때 그 시간을 장애인을 둔 부모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십자가를 나눠지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경험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부 모든 교사들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훈이를 찾았는데 힘들다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사히 훈이를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지요.”

김 목사는 지금도 사랑부 아이들을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 청년들이 졸업한 이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지 염려하고 있다. 장애인 청년들이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김 목사는 그 청년들이 워십과 찬양을 하면서 교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성인이 된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교회나 협력기관에 장애인들을 위한 작업시설과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형에 그 아우

 

김요성 목사의 남동생이자 예수사랑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선 성도는 김 목사의 추천으로 1997년 온누리교회 장애인부서에 왔다. 형 곁에서 사역을 돕고 싶어서 장애인 부서에 오게 되었다. 여동생 김미선 성도도 함께했다. 여동생은 사랑부에서 반주를 맡고, 형수 박인숙 사모는 특수교육을 전공하여 장애인들을 섬기고 있었다. 형 김요성 목사는 사랑부 담당교역자인데 자기만 빠질 수 없었다.

김영선 성도는 군 시절에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러다 휴가를 나왔는데 마침 사랑부에서 여름캠프를 한다고 했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고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한번 섬기고 보니 사랑부 아이들이 잊히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떠올라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제대를 하고 2003년부터는 사랑부 정식 교사가 되어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그는 “휴가 나와서 친구들과 어울리면 재미있었겠지만 사랑부 여름캠프 자원봉사를 신청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사랑부의 교사다. 그가 2004년 괌으로 단기선교를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왔는데 때마침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예수사랑부가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예수사랑부 찬양 인도자가 없다는 말을 듣고 곧장 섬기기 시작했다. 그 형에 그 아우가 따로 없다.

김요성 목사 말고도 장애인 부서에는 귀한 손길이 많았다. 김영선 성도는 예수사랑부 허왕호 성도를 강력 추천했다. 허왕호 성도는 2004년 예수사랑부가 출범했을 때 김영선 성도와 함께 사랑부에서 예수사랑부로 건너왔다. 허왕호 성도는 다른 교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장애인 청년들을 위한 주중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고 섬기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섬기는 것도 모자라 중보기도 모임에도 결석한 적이 없다. 허왕호 성도는 최근 한 중학교에서 장애인 보조교사로 일하게 됐다. 사랑부에서 장애인들을 돌보고, 섬긴 경험이 직장을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많은 교사들이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거저 받지 않으신다”며 감탄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선 성도는 장애인부서 교사들의 꿈은 같다고 했다. 장애인 청년들이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 같은 교사로 남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가르치기보다 삶을 함께 나누는 그런 교사를 꿈꾼다고 했다. 김영선 성도의 마지막 말에 그의 진심이 담겼다.

“저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지만 학문적, 지식적으로 섬기는 교사가 아닌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 그들 곁에 있습니다.”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