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더 멋진’ 이야기

온누리 NGO 더멋진세상 해외봉사자 박현규 형제
지난 12일 네팔 고레다라 마을 조기복구사업 완료 감사예배를 드렸다. 지진피해로 붕괴되었던 산골마을을 불과 10개월 만에 재건해냈다. 이 멋진 이야기 속에 감춰진 청년이 있다. 네팔 고레다라마을에서 1년 동안 봉사한 박현규 형제(요셉공동체)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온누리 NGO 더멋진세상 해외봉사자로네팔에 파송되었다. 행정업무를 도맡았지만 때로는 삽질도 하고, 자재도 날랐다. 1분 1초를 아껴가며 1년을 보냈다.그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비전과 소명을 되찾았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박현규 형제도 남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청년이었다. 온누리 NGO 더멋진세상 해외봉사자로 헌신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상에 치이고, 신앙을 고민하고, 취업을 걱정했었다.“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로 유학을 가려고했어요. 건축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거든요. 어학연수까지 했는데 유학을 가지 못했어요. 가고자했던 학교에 떨어졌거든요.”
이제 취업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국내건축업계 동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근무조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박봉에 야근은 기본이었다.
“취업한 친구들을 보니까 월급은 150만 원정도 받으면서 매일같이 야근을 하더라고요.새벽 4시에 퇴근해서 찜질방에서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 하는 게 일상이라는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굳이 건축만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지인과함께 R C카(무선조종 자동차) 스타트업 사업을 시작했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은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지도 않았다.또 다시 방황을 하려던 찰나 온누리 NGO 더멋진세상 네팔 고레다라 마을 조기복구사업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그의나이 스물아홉이었다. 1년을 해외봉사에 투자하기에는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그 1년 동안누군가는 스펙을 쌓고, 또 누군가는 연차를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르심에 순종했다. 신앙의 회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건축을 전공한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앙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고요.”
그렇게 2016년 2월 네팔 땅을 밟았다. 네팔에서 보낸 1년은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했다.돈을 보면 직업, 비전을 보면 사명박현규 형제는 해발 1,3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네팔 고레다라 마을에서 가옥 69채, 학교,교회, 마을 내부도로, 상수도 건립공사를 했다.행정업무를 도맡았고, 필요할 때면 공사 현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산 중턱에서 사는 것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흙바닥에 얼기설기 세운 임시거처에서 1년을 살았다. 주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돼서 편하게 쉬지 못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세상적으로 살아온 내가 어떻게 교회에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지를 의심했어요. 그 사실을 믿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네팔 고레다라 마을에서 지내면서그 생각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고레다라 마을주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죄 많은 저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신앙을 회복한 그에게 이번에는 비전을 보여주셨다.
“박일구 선교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 돈을 보면 직업, 비전을 보면 소명’ 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왜 건축을 전공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돈과 시간을 보니까 건축이 싫어졌었는데 저는 돈 많이 벌려고 건축가가 되려던 게 아니었거든요.건축 선교사가 되는 게 저의 꿈이었어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더라고요. 그 비전이 다시보이니까 돈과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박현규 형제는 돈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비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선교지에 더 좋은 집과 더 멋진 집을 지어주고 싶은데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해요. 지금 제가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일단 실력을 쌓아야겠더라고요. 이제는박봉에 야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 지난 1년간 네팔에서 헌신한 박현규 형제.
◀ 고레다라 은혜교회 건축현장.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