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내가 할 수 있는 선교

 

/이선규 권사 (안산산본 공동체)

 

나는 2003년 안산으로 이사 왔다. 그때도 다수의 외국인 이주민들이 안산에 살고 있었다. 외국인 이주민들의 한국살이는 쉽지 않다. 특히 어설픈 한국어 실력은 한국생활 적응에큰 어려움이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절박하게 돈이 필요해서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나는 안산에서 이주민들을 만나기 전까지 선교사님들을 대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선교라고 생각했다. 나는 작은 건물 임대업을 했다. 자연히 외국인 세입자들이 많았다. 이주민들에게 비누, 수건, 치약, 칫솔,이불 등을 준비해 두었다가 조금씩 나눠주었다. 이러한 사소한 나눔에도 감동받는 모습을 보며 이것도 선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산M센터에서도 이주민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이주민들과 지내면서 TV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를 목격했다. 한 세입자의 이야기다. 갓난아이와 함께 한국에 온 중국인 D씨가 지적장애인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쌍둥이를 낳았다. 지적장애인 남편을 대신해 D씨가 돈을 벌었다. 그런데 D씨가 그만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남겨진 자녀들에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D씨가 중국에서 데려온 아이가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지적장애인 남편에게 성폭행을당했다. 성폭행을 당해도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쌍둥이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밖에서 서성이는 첫째를 만나 대화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안산M센터 스타트리 아카데미에 데려와보살피기 시작했다. 집 밖에 나오지 않으려하고, 왜소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많이 성장했다. 섬기는 이들의 후원으로 영양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그 친구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외롭고 힘들 때 예수 믿는 사람이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겼다. 쌍둥이 동생들도 힘든 일이 생기면 교회를찾을 것이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일하셨기에 가능했다.그동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리나라만 생각하고,나의 신앙 지키기에만 급급했다. 이주민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이주민선교학교를 수료하면서열방을 보게 됐다. 다양한 나라의문제를 알고, 서로 돕고, 주께 함께가는 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결단이 필요하지만 이주민을 돕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하지 않다.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해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