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전도자가 있다
농어촌선교팀이 간다
명이복 목사와 여수 낭도규포교회
전라남도 여수에서 남쪽으로 26km 떨어진 곳에 ‘낭도’가 있다. 여수 시내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조화대교, 둔병대교, 낭도대교를 건너면 조용하고 한적한 섬 낭도가 나온다. 그 섬에 가면 아주 특별한 전도자가 있다. 낭도규포교회(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규포안길 1-7)를 섬기는 명이복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월 20일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이영근 장로, 박진호 팀장, 손현석 총무)과 함께 낭도규포교회를 방문했다.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후원으로 시작한 교회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됐기 때문이다.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덕분에 명이복 목사의 숙원이던 친교실이 생겼고, 낡고 부식돼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종탑도 새로 세웠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지난 2월 20일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이영근 장로, 박진호 팀장, 손현석 총무)과 함께 낭도규포교회를 방문했다.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후원으로 시작한 교회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됐기 때문이다.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덕분에 명이복 목사의 숙원이던 친교실이 생겼고, 낡고 부식돼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종탑도 새로 세웠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낭도규포교회 전경. 낡은 종탑을 새로 세우고, 친교실(노란색)을 만들었다.>
<낭도규포교회 성도들과 함께>“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에요.”
따뜻하고, 밝고, 깨끗하게 지어진 친교실을 바라보며 손현석 집사(관악금천공동체)가 감탄했다. 손 집사는 낭도규포교회에 처음 왔을 때 열악한 상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친교실 자리는 외관이 최악이었어요. 천막과 흙바닥이 전부였거든요. 지저분하고, 벌레도 많더라고요. 종탑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요. 사모님이 저희보고 종탑이 무너져서 사택을 덮칠까 너무 걱정되고 무섭다고 토로했을 정도였습니다.”
열악하기 그지없던 낭도규포교회에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었다. 서빙고 농어촌선교팀 후원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는 소식 말이다. 두 달 동안 이어진 리모델링 공사로 낭도규포교회에 새 종탑이 세워지고, 친교실이 생겼다.
낭도규포교회 리모델링 공사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송경옥 권사(중종로공동체)다. 본인의 섬김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송경옥 권사님이 서빙고 농어촌사역팀에 후원을 해주셔서 낭도규포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송 권사님도 함께 오셔서 리모델링 마친 낭도규포교회를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본인의 섬김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 저희만 왔습니다.”
낭포규포교회 명이복 목사가 농어촌선교팀과 송경옥 권사,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정말 큰 은혜를 입었다며 거듭 감사인사를 했다.
“저는 늘 ‘말로만 하는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니고 행동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온누리교회 농어촌선교팀, 송경옥 권사님,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이 바로 그 삶을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 한 마디…
명이복 목사가 낭도규포교회에 온 것은 2000년이었다. 당시 명 목사는 45세로 뒤늦게 신학교에 입학해서 3학년 재학중이었다.
“아는 전도사님이 낭도규포교회에 한 번 와달라고 사정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도 산 넘고 바다 건너 왔습니다. 당시 낭도규포교회 성도가 80~90대 할머니들 스무 명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신학교도 다녀야 하고, 교회도 너무 열악해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이복 목사의 마음을 돌린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시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사역지로 낭도규포교회가 어떻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정말 별로라고 했더니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목회한다는 사람이 어찌 좋은 데서만 일하려고 하느냐?’고요. 어머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낭도규포교회를 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명이복 목사에게 어머니는 예수님 다음으로 신앙의 표본이자 지표가 된 인물이다. 25세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온갖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정말 힘들고 팍팍한 삶이었지만 한 번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명이복 목사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용서하시듯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수조차 용서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신앙은 명이복 목사에게 절대적인 지침과 같았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낭도규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는데 상황은 계속 좋지 않았다. 신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교통이 너무 안 좋았다. 육지에서 누리던 기본적인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설상가상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어머니가 명이복 목사가 낭도규포교회 부임한 지 43일 만에 소천하셨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이 엄청났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어머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다. 명 목사는 어머니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어머님이 유언하신 게 있습니다. ‘목회자는 항상 세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설교할지 모르니 항상 설교할 준비를 해야 하고,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례 치를 준비를 해야 하고, 언제 어디로 이사갈 지 모르니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어머님의 유언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제 인생의 통로이자 신앙의 통로였습니다. 저에게는 어머님의 말씀이 하나님 말씀 같았습니다.”
명이복 목사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21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낭도규포교회를 섬기고 있다. 마을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섬기고 있다. 명이복 목사는 마을 이장으로도 섬기고 있다.
“보통 관공서나 마을에서 목사와 교회를 싫어하는데 저는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먼저 전화가 옵니다. 공무원들도 무척 협조적이고요.”
명이복 목사는 낭도 규포마을과 낭도규포교회만 섬기는 게 아니다. 교회가 없는 인근 섬(운두도, 진지도, 지지도)에도 틈만 나면 간다.
“배로 가까운 곳은 25분, 먼 곳은 4~5시간 걸리기도 합니다. 섬마다 주민들이 1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마땅한 가게가 없기 때문에 두부, 콩나물, 계란을 사서 갑니다. 식료품을 전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아직까지는 완강합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제 임기가 4년 남은 명이복 목사의 바람은 끝까지 교회와 주민들을 잘 섬기는 것이다.
“저의 꿈이자 바람은 낭도규포교회와 세 개 섬 주민들을 더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복음 전하고, 설교하고, 기도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저와 낭도규포교회, 운두도, 진지도, 지지도 주민들을 잊지 말고 기도해주십시오.”
후원문의: 02-3215-3434
“아는 전도사님이 낭도규포교회에 한 번 와달라고 사정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도 산 넘고 바다 건너 왔습니다. 당시 낭도규포교회 성도가 80~90대 할머니들 스무 명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신학교도 다녀야 하고, 교회도 너무 열악해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이복 목사의 마음을 돌린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시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사역지로 낭도규포교회가 어떻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정말 별로라고 했더니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목회한다는 사람이 어찌 좋은 데서만 일하려고 하느냐?’고요. 어머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낭도규포교회를 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명이복 목사에게 어머니는 예수님 다음으로 신앙의 표본이자 지표가 된 인물이다. 25세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온갖 고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정말 힘들고 팍팍한 삶이었지만 한 번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명이복 목사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용서하시듯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수조차 용서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신앙은 명이복 목사에게 절대적인 지침과 같았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낭도규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는데 상황은 계속 좋지 않았다. 신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교통이 너무 안 좋았다. 육지에서 누리던 기본적인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설상가상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어머니가 명이복 목사가 낭도규포교회 부임한 지 43일 만에 소천하셨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이 엄청났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어머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다. 명 목사는 어머니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어머님이 유언하신 게 있습니다. ‘목회자는 항상 세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설교할지 모르니 항상 설교할 준비를 해야 하고,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례 치를 준비를 해야 하고, 언제 어디로 이사갈 지 모르니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어머님의 유언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제 인생의 통로이자 신앙의 통로였습니다. 저에게는 어머님의 말씀이 하나님 말씀 같았습니다.”
명이복 목사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21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낭도규포교회를 섬기고 있다. 마을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섬기고 있다. 명이복 목사는 마을 이장으로도 섬기고 있다.
“보통 관공서나 마을에서 목사와 교회를 싫어하는데 저는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먼저 전화가 옵니다. 공무원들도 무척 협조적이고요.”
명이복 목사는 낭도 규포마을과 낭도규포교회만 섬기는 게 아니다. 교회가 없는 인근 섬(운두도, 진지도, 지지도)에도 틈만 나면 간다.
“배로 가까운 곳은 25분, 먼 곳은 4~5시간 걸리기도 합니다. 섬마다 주민들이 1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마땅한 가게가 없기 때문에 두부, 콩나물, 계란을 사서 갑니다. 식료품을 전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아직까지는 완강합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제 임기가 4년 남은 명이복 목사의 바람은 끝까지 교회와 주민들을 잘 섬기는 것이다.
“저의 꿈이자 바람은 낭도규포교회와 세 개 섬 주민들을 더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복음 전하고, 설교하고, 기도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저와 낭도규포교회, 운두도, 진지도, 지지도 주민들을 잊지 말고 기도해주십시오.”
후원문의: 02-3215-3434
<농어촌교회에서 온 편지>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수의 아름다운 섬 낭도에서 규포교회를 섬기고 있는 명이복 목사라고 합니다. 이번에 온누리교회에 큰 빚을 져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40대 중반 주님의 소명을 받아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신학교 3학년 때 한 번도 들어보지도 가보지도 못했던 낭도에 오게 되어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농어촌교회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낭도규포교회 또한 고령화와 성도 수 감소,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5년 동안 섬과 육지를 오가며 신학교에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21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후회되는 날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날개 없는 천사들의 선함의 행실로 인하여 다시 용기와 힘을 얻어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합니다.
이번에 온누리교회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온누리교회의 도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수년 전에도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의 도움으로 수세식 화장실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습니다. 친교실이 만들어져서 무엇보다 기쁩니다. 교회 가 설립되고 46년 동안 단 한 번도 친교실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 기쁨을 말로 다 못 할 정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낭도규포교회 성도님들께 내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강조합니다. 이 어려운 행함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온누리교회 이재훈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특별히 이번 리모델링 공사에 큰 힘을 실어준 송경옥 권사님께 감사합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주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평강과 은혜가 항상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 명이복 목사(낭도규포교회)

저는 여수의 아름다운 섬 낭도에서 규포교회를 섬기고 있는 명이복 목사라고 합니다. 이번에 온누리교회에 큰 빚을 져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40대 중반 주님의 소명을 받아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신학교 3학년 때 한 번도 들어보지도 가보지도 못했던 낭도에 오게 되어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농어촌교회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낭도규포교회 또한 고령화와 성도 수 감소,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5년 동안 섬과 육지를 오가며 신학교에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21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후회되는 날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날개 없는 천사들의 선함의 행실로 인하여 다시 용기와 힘을 얻어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합니다.
이번에 온누리교회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온누리교회의 도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수년 전에도 서빙고 농어촌선교팀의 도움으로 수세식 화장실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습니다. 친교실이 만들어져서 무엇보다 기쁩니다. 교회 가 설립되고 46년 동안 단 한 번도 친교실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 기쁨을 말로 다 못 할 정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낭도규포교회 성도님들께 내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강조합니다. 이 어려운 행함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온누리교회 이재훈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특별히 이번 리모델링 공사에 큰 힘을 실어준 송경옥 권사님께 감사합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주님의 크신 도우심으로 평강과 은혜가 항상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 명이복 목사(낭도규포교회)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