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터치 첫째 날-꿈 더하기
드림터치 첫째 날,
제목: 꿈 더하기
발문: 꿈만 있으면 좌절하지만 하나님이 더해지면 선생님들의 꿈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지난 6월 의사 선생님 1000여명을 모시고 전도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 분들에게 적합한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러브’란 단어를 선택, ‘러브터치’를 개최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들을 모시면서 ‘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집회 이름을 ‘드림터치’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영원한 직업이 바로 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사는 어떤 것보다 본질적이고 우선하는 직업입니다.
교사, 가장 본질적이고 우선하는 직업
우리가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교사는 엄마입니다. 최초의 교실은 엄마 품입니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혀 백지 상태에서 우리는 엄마의 사람을 배웁니다. 엄마의 감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엄마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의 수준으로 맞춘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내려가는 교육입니다.
헨리나우엔이라는 하버드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장애인의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고민한 끝에 그는 작은 공동체로 들어가 아이들을 위해 평생 살았습니다.
그분이 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지능이 거의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지금까지 배운 철학과 역사는 무의미했다. 내가 배우고 가르친 고도의 지식을 전혀 전할 수가 없었다. 오직 전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뿐이었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가 성장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이 시기에 어떤 엄마를 만나는지는 인생을 결정하기까지 합니다. 이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만나는데 선생님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미래는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범대학이나 이에 준하는 교육기관에서 훈련받을 때 처음 가졌던 꿈과 비전을 아직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희미해져 이제 다람쥐 쳇바퀴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잃어버린 꿈
여러분들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쫓겨나지 않는 안정된 직업이나 최소한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란 점이 여러분을 이끌었습니까. 하지만 좀 더 생각이 있는 교사였다면 가르친다는 것에, 어린이에 대한 비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린이는 한 국가의 미래다. 교육은 한 시대의 꿈나무라는 비전 말입니다.
어떤 교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농촌이나 특수교육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제가 만나본 선생님 중에는 전쟁과 기아, 테러 속에 굶주리고 버려진 아이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가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내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민족적인 공통분모조차 없는 아이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선생님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선교사란 가질 수 있는 데도 안 가지는 사람이요, 안 가도 되는 데 가는 사람이요, 누릴 수 있는데 안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에는 제가 존경하는 분 중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이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의 저자, 김혜자 성도입니다. 그 분은 시에라리온이나 이디오피아 등 기아와 테러 등으로 얼룩져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 분의 눈물 속에 제 눈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질문 세 가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가르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을 위로하고 가르치고 격려해 주는 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외로울 때, 한계에 부딪혔을 때, 절망했을 때 누구에게 가십니까. 진실이 왜곡되고 매도될 때, 가르치는 아이가 삐뚤어졌을 때 여러분을 누구를 찾으십니까.
가르친다고 여러분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칠수록 우리의 가르침은 더 높아져야 하고, 우리의 삶과 질이 더 높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교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비뚤어진 상처를 치유하고 인격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가운데 사람이 많은 교사도 있지만 상처와 아픔, 분노를 품은 교사도 있습니다. 만일 교사 자신의 인격과 성격이 비뚤어져 있다면 이것은 누가 치유해 줍니까.
교사라는 직업은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기가 참 힘듭니다. 많은 분노를 감추고 가르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가르치다보면 우리의 가르침에는 독이, 율법이, 불편함이 존재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상처는 누가 치유합니까. 누가 내면의 억압을 풀어줍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교사들에게 도덕적 완전을 요구합니다. 인격적 성숙을, 전문적 지식을 요구합니다. 목사와 마찬가지로 교사도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되고 싶지는 않지만 본의 아니게 이중인간이 되기 싶습니다. 이 괴리사이에 여러분에게 희망과 위로, 용기를 줘서 현실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그런 분을 누구입니까.
셋째,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가르치십니까. 여러분은 가르친다는 꿈을 가지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가르침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 꿈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잊히고 쇠퇴해간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꿈이 마비되고 우리의 꿈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 딴 길로 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는데 꿈의 의미를 다 잃어버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장 무서운 것은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꿈 더하기
이 밤, 여러분의 소중한 꿈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꿈만 가지고 있으면 좌절하지만 한 가지가 더해지면 여러분의 꿈은 살아날 것입니다. 지뢰밭을 안전하게 걷기 위해서 지뢰를 심은 사람을 따라가면 되듯이 이 세상을 창조한 그 분을 따라가면 삶은 안전해집니다.
하나님은 이론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호흡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할 정도로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작게라도 내뱉는 순간, 하나님은 깜짝 놀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달려오십니다. 그분은 강제로 여러분 가운데 들어오시길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초대를 기다리십니다.
/정리=차명권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