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 우상에 대한 고찰 1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가져온 허상(虛像)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교회가 바로 서가는 교회사를 공부해보면 역사상 수많은 이단적 집단들이 등장했던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믿음을 크게 미신적 신앙과 인본주의 철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미신적 신앙들은 인간의 헛된 상상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하든가 진리의 세계관(성경적 세계관)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인본주의 철학은 시대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집요하게 참된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이성에 의존한 자주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인간의 귀에는 합리적이고, 아름답고, 선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외쳤던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금지 시킨 이래 미국 사회는 영적, 정신적, 가치적, 리더십을 잃기 시작했다. 온갖 성적 타락과 자본주의적 타락이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결국은 가장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인본주의가 사회에 팽배하게 되면 인간을 위한다는 그들의 구호는 거꾸로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고 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악영향이 커진다.
이단들의 발호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신경(信經, credo)들을 작성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복음서의 기록들과 사도들의 전승을 중심으로 변증하는 가운데 정통신학이 확립되었듯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인본주의에 대해서 그 계략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고 이단적인 혼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본주의적 시각의 중심에는 ‘인권(人權)’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본주의는 루소의 소위 ‘천부인권론(天賦人權論)’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기본권은 하늘로부터 왔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은 소중하고 모든 사람은 인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매우 그럴듯한 말이고, 귀에도 듣기 좋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아무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부(天賦), 태어나면서부터 그냥 받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의 호흡으로부터 영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하늘로부터 인권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들이 말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없이 하늘에서 받았다는 것 그 자체가 상상력이고 비실존적인 철학 내지는 속임수일 뿐이다.
인권에 대해 크리스천이 알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이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본주의와 기독교 진리 사이에 행위적으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며 타인들에게도 “당신의 인권을 주장해서 쟁취하라”고 강하게 요청한다. 반면 창조주를 아는 성도들은 자신의 권리(인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귀하게 여긴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크리스천은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긴다. 인간의 생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죗값을 치르고 죽으실 정도로 귀중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시고 이토록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장할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이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좋은 것을 값없이 주신 것을 의미한다. 자격 없는 자가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 소중한 것들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의 마음, 책임의식 등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의 행실로는 전혀 존귀하지 못한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존귀하게 여겨주셨기 때문에 은혜를 주신 자에게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이런 책임감을 느낄 능력이 없다. 그들은 창조주가 계심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가 피조물인 줄도 모른다. 그들의 육신이 거저 생긴 줄로 착각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무슨 권리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니다.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져왔다. 인본주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공산주의가 태어났다. 인간의 책임을 망각한 채 권리만 함부로 주장하면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 정대서 장로(푸른누리공동체)

이단들의 발호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신경(信經, credo)들을 작성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복음서의 기록들과 사도들의 전승을 중심으로 변증하는 가운데 정통신학이 확립되었듯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인본주의에 대해서 그 계략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고 이단적인 혼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본주의적 시각의 중심에는 ‘인권(人權)’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본주의는 루소의 소위 ‘천부인권론(天賦人權論)’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기본권은 하늘로부터 왔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은 소중하고 모든 사람은 인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매우 그럴듯한 말이고, 귀에도 듣기 좋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아무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부(天賦), 태어나면서부터 그냥 받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의 호흡으로부터 영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하늘로부터 인권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들이 말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없이 하늘에서 받았다는 것 그 자체가 상상력이고 비실존적인 철학 내지는 속임수일 뿐이다.
인권에 대해 크리스천이 알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이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본주의와 기독교 진리 사이에 행위적으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신의 인권을 주장하며 타인들에게도 “당신의 인권을 주장해서 쟁취하라”고 강하게 요청한다. 반면 창조주를 아는 성도들은 자신의 권리(인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귀하게 여긴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크리스천은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존귀하게 여긴다. 인간의 생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죗값을 치르고 죽으실 정도로 귀중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시고 이토록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장할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이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좋은 것을 값없이 주신 것을 의미한다. 자격 없는 자가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 소중한 것들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빚진 자의 마음, 책임의식 등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의 행실로는 전혀 존귀하지 못한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존귀하게 여겨주셨기 때문에 은혜를 주신 자에게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이런 책임감을 느낄 능력이 없다. 그들은 창조주가 계심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가 피조물인 줄도 모른다. 그들의 육신이 거저 생긴 줄로 착각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무슨 권리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니다.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져왔다. 인본주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공산주의가 태어났다. 인간의 책임을 망각한 채 권리만 함부로 주장하면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 정대서 장로(푸른누리공동체)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