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독자마당

독자마당

[코로나19, '온라인 양육'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큐티, 사랑의 음성 듣는 시간

코로나19, ‘온라인 양육’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큐티스쿨
 
큐티, 사랑의 음성 듣는 시간

board image
김하영 성도(서대문공동체)는 큐티스쿨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

 
나는 광야 같은 유학 생활을 하던 중에 시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학업, 생활, 건강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학교가 시골에 있어서 정적인 분위기였고,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했다. 매일 새벽기도와 말씀 읽기를 통해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졸업하고 미국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나를 한국의 한 회사로 이끄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31)는 말씀을 하셨다. 말씀에 순종해서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는 내가 이곳에서 직장을 다닐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곳에 있었다. 전공과도 관련이 없었다. 회사에는 내 전공과 동일한 전공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가라하신 곳이니 모든 것이 형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힘들었다. 일이 전공과 맞지 않아서 모든 것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가 꼭 필요했다. 일하면서도 엄청난 분량의 공부를 해야 했는데 회사는 내게 그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과 공부로 심적으로 늘 분주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육적으로도 약해졌다. 분주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준 것은 큐티였다. 큐티는 지친 내 영을 살리는 영의 양식이었다. 큐티를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큐티는 꼭 필요한 생명의 양식이었다. 그런데 내 큐티에는 문제가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큐티를 했는데 두려움이 있었다. 큐티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엉망진창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허겁지겁 때우듯 급하게 말씀을 읽었다. 매우 분주한 마음과 오늘 해야 할 일이 가득 찬 머리로 큐티를 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기도는 랩을 하듯이 급하게 쏟아내고 일을 시작했다. 큐티스쿨을 수료하기 전 나의 큐티 모습이 그랬다. 내게 큐티는 기대감 없이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하는 시간이었다. 먹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아침밥 같은 것이었다.
큐티스쿨 강의를 들으면서 반성했다. 노치형 목사님 강의 중에 내 마음에 꽂힌 말씀이 있다. “큐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랑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는 말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큐티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큐티 시간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높은 사람들과 편하지만은 않은 어려운 자리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키시면 어떡하지, 내가 잘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실 텐데 혼내시면 어떡하지 고민하면서 종종거렸다. 이제까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이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졌다.
이제 나의 큐티는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실 사랑의 음성을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늘 경직되어 있던 나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하나님과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 매일 새롭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하게 된다. 
큐티 시간이 즐거워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큐티 나눔이다. 큐티 나눔을 통해 각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서로 하루를 위해 붙들어야 할 말씀들을 나눈다. 큐티나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없는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깨닫는다. 영혼마다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감동을 더 해주신다. 오랫동안 해오던 큐티라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큐티스쿨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됐다. 큐티스쿨은 하나님과 만남이 새롭게 변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 김하영 성도(서대문공동체)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