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태화 형제 1주기- “하동에 복음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故 이태화 형제가 하늘나라로 간지도 어언 1년이 지났습니다. 생전에 태화 형제가 언제나 가슴에 품고 다닌 경남 하동. 2004년 8월 29일 故 이태화 형제의 순교의 피가 그 땅에 뿌려지고, 아내인 박혜령 자매와 어머니, 유가족들의 뼈아픈 눈물이 그곳을 흠뻑 적시고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기도가 깊이 스며든 그곳에는 이제 복음의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태화 형제의 고향 하동군 가탄마을은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죽음을 맞게 된 것을 주민들이 알게 된 이후, 알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사랑에 감동되어 전례 없는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아웃리치 봉사를 갔었던 화개마을 주민들도 적대감이 없어지고 교회에 대해 굳어져있던 마음이 녹아져서 전도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으며 교회도 25년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한국 복음화의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목이 터져라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외치다가 참수형을 당한 영국인 토마스 목사님의 고귀하게 뿌려진 피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참수하는 이에게도 성경을 건네주던 그분의 마음을 하동 땅을 사랑하여 매해 그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던 故 이태화 형제의 간절한 마음에서도 우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교를 위해 발마사지 자격증을 따고 함박 웃음을 보이던 이태화 형제의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영혼을 사랑하여 섬기며 봉사하며 복음전하기를 기뻐했고 목숨을 주기까지 그 땅을 사랑한 그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한사람의 순교의 희생은 그렇게도 귀했습니다. 그로인해 하동의 강력한 불교 문화권은 힘없이 무너져가게 된 것입니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고 당시 차는 운전석이 더욱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차 머리를 자신의 쪽으로 꺾은 것이었습니다. 도로 위에 난 바퀴자국을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본인의 목숨보다 친구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태화형제의 희생이 너무도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태화 형제의 모교회인 화개제일교회 아동부에는 현재 40명 남짓의 아이들이 말씀 가운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2의, 제3의 태화형제가 나와서 하동을 더욱더 복음의 빛으로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감동과 은혜로 살아있을 것이며 하동과 나아가 세계가 복음의 기적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유가족들은 큰 아픔으로 실신할 정도로 힘겨워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씩 다시 일어날 기운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찾아오는 그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으로도 달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故 이태화 형제의 2세 이정찬 군은 지난 3월 10일 출생해 건강히 자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혜령 자매는 힘겨운 고난을 딛고 일어나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함께 차에 탔던 전경렬, 김성국 형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순탄한 회복을 보이고 있으며 재활치료를 통해 회복하는 중입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지속적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장희정 (여호수아 공동체 직장선교부)
지난 5월, 고향 땅을 전도하기 위해 애쓰던 고 이태화 형제를 기념해 그의 모교회인 화개제일교회에는 순교기념관이 세워졌다.
고향 마을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던 고 이태화 형제 생전 모습.
지난 5월, 고향 땅을 전도하기 위해 애쓰던 고 이태화 형제를 기념해 그의 모교회인 화개제일교회에는 순교기념관이 세워졌다.
고향 마을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던 고 이태화 형제 생전 모습.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