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2006] 말씀집회1-True Worshiper
라준석 목사 사도행전 16장 25~26절 하나님이 좋아서 시를 짓듯이 노래하고, 슬픔과 한숨의 노래가 아니라 기쁨과 신뢰의 노래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희한한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일도 희한한 사건입니다. 함께 16장 25절에서 26절을 읽겠습니다.“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저는 그들이 감옥에서도 예배자가 되었다는 것에 일차적인 집중을 하고 싶습니다. 지진이 나고 감옥문이 터졌다는 것보다 더 희한한 사건은 그들이 감옥 가운데에서도 예배자로 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처절한 상황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는 상황을 분석해 보면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대항하여 욕을 퍼부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이들이 형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말하자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로마의 태형은지휘관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 때립니다. 네 번째는 깊은 옥에 갇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가장 깊은 옥이라는 최상급을 쓰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발을 착고에 채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상상해 보면 양 다리를 완전히 벌려서 착고를 채우고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이 자세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마지막 밤중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에 따르면 밤 12시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가장 졸음이오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이 자리에 보내셨냐고 원망하고 분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인지 회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예배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제대로 살아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감옥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신기하고 아름답고, 멋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성경에 그들은 기도하고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빨리 나가야 하니까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찬양도 했습니다. ‘그들의 찬양을 들었다’는 표현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기쁨의 시와 기쁨의 노래를 들었다’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시를 지은 것입니다. 감옥에서 말입니다.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이 그들의 시를 들었고,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노래였습니다. 지진이 날 때까지, 감옥문이 터질 때까지 찬양을 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감옥문이 터지는 것을 예상하고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며 찬양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몸은 갇혔지만 그들의 영혼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감옥 안에서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지성소’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들은 여섯 가지 어려운 상황을 뛰어넘어 진정한 예배자로 설 수 있었을까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철저한 신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보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입니다.앞으로 내가 이 감옥문을 나가지 못하고 이 비참한 못습으로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 신뢰에서 찬양이 터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친구 관계는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친한 관계입니다. 친하다는 것은 조건을 달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계산하지 않고, 결과를 예측하지 않고 그냥 주님의 모든 판단을 받아들였습니다.그날 그들은 예배자고, 그 감옥은 지성소였습니다. 지성소는 피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들은 온전한 번제물로 자기 인생을 놓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날 그 감옥이 그들의 지성소가 되었습니다.나는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가 지성소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이 민족 상황이 우리의 지성소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시를 짓듯이 노래하고, 슬픔과 한숨의 노래가 아니라 기쁨과 신뢰의 노래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 동안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때 이곳 성전 안이 당신의 지성소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 하나님께서는 옥터가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교회가 섰습니다. 그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니다. 유럽 최초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배 위에 서는 것입니다. 유럽의 최초의 교회는 예배의 자리, 그 지성소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비판하고 욕하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축복입니다. 예배자에게 오는 축복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삶의 현장에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각자의 소리를 내는 예배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이 시간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여러분의 소리를 내십시오. 바울과 실라에게서 위대한 참된 예배자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다른 환경과 비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소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여러분 형편의 소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찬양할 때 정말로 하나님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체면 차리지 마십시오. 비교하지 마십시오. 바울과 실라가 감옥 안에서 자신의 소리를 냈듯이 여러분 형편의 독특성을 가지고 예배자로 나아가십시오. 한숨의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찬양을 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흐르게 될 것이고 그곳이 지성소가 될 것입니다. 그곳에 교회가 서게 될 것이며 상황이 변하는 놀라운 역사도 있을 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하십시오. 그 자리가 지성소가 되게 하십시오. 당신이 있는 그 자리가 지성소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