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우리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새로 세워진 캠퍼스 담당목사들을 만났다. 주인공은 서빙고 박종길 목사, 양재 이상준 목사, 수원 신기섭 목사, 대전 박태영 목사, 평택 김소리 목사, 인천 서경남 목사다. 그들의 신앙과 가족, 포부와 비전을 들을 수 있었다.
/ 특별취재팀

 

 

■ 서빙고 온누리교회

예수 닮은 좋은 목사 꿈꾸는 ‘박종길 목사’

  박종길목사님1    
“초등학교 4학년 때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여름성경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농번기에 저 혼자 집에 둘 수 없어 교회에 보내셨던 거였어요.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날 이후 서울에 와서 집 근처 교회를 다녔어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다보니 교회에 계속 나가고 싶었어요. 목사는 교회에 계속 나오니까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신학교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저의 첫 전임목회지입니다. 1993년 1월 1일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996년 3월에는 중국 북경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한지 벌써 22년 되었네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 서클에서 만났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제를 시작해서 연애를 10년 했습니다. 결혼한지는 25주년 되었으니 벌써 35년을 사랑한 사이죠.
큰 아들은 대학졸업 후 보스턴에서 직장생활 중이고 작은 아들은 캘리포니아의 바이올라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좋은 목사가 되고 싶어요. 담임목사님이 시키는 일 열심히 잘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순종과 인내에요. 리더십에 대한 순종, 권위에 대한 순종, 어른에 대한 순종을 말하지요. 힘들다고 포기한다든지 후퇴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큐티를 좋아합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을 잘해요. 단점은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어요. 살면서 제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고, 둘째는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온누리교회와 하용조 목사님을 만난 거에요. 제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 양재 온누리교회

자신을 살린 생명의 말씀 전하는 ‘이상준 목사’

이상준목사님 (1)
“3대째 믿음의 집안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삼형제에게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자신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6학년이었던 큰형은 장가는 가보고 죽어야겠다고 대답했고, 5학년이었던 작은형은 돈 많이 벌어 좋아하는 자장면 먹고 죽을 거라고 답했고, 3학년이었던 저는 ‘세상 험한 꼴 보지 않고 좋지 뭐’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울증이 심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 전도사님이 준 성경책을 3개월 만에 읽으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살을 묵상하던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병치레도 잦았는데 하나님을 만난 이후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를 살린 생명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열다섯 살에 인생이 바뀌면서 선교에 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선교를 하려면 영어가 기본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GBT와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번역선교사에 대한 비전이 생겼고, 성경에 대한 관점 없이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같은 학교 영문과 3년 후배였습니다. 영문과 기독인모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교 내에 기도실이 있었는데 기도하러 갈 때마다 아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가 생겼습니다. 1,000일을 교제하고 결혼했는데 교제하면서 우리는 1999년에 결혼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만났습니다. 진짜 1999년도에 결혼했습니다. 제 전화번호 끝자리가 9925인데 저희 결혼기념일을 의미합니다.아내와 아들 둘(이지성, 이지훈)과 살고 있습니다.거짓에 묶여 있던 사람들이 자유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최근 교회에 사회선교부가 신설되었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저의 장점은 끈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집요하게 해냅니다. 약점은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다는 것입니다.”

 
■ 수원 온누리교회

입소문 날만큼 뜨거운 예배 꿈꾸는 ‘신기섭 목사’

18. 신기섭(강촌)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가져 4대째입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영수 역할을 하셨다고 해요. 목회자와 장로를 합친 역할이었죠. 하지만 저는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대학 입학 전에 예수님을 만났어요. 1982년 2월 제가 다니던 교회에 홍정길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제가 신학공부 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을 했어요. 그때 서울로 와서 1989년부터 온누리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직장에서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신학공부 하는 것을 반대하시던  어머니께서 새벽예배를 가시면서 부르심에 순종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아내는 온누리교회 청년부에서 만났어요. 챔버를 하는 자매였습니다. 순장들이 서로의 순원을 소개시켜주었는데 그때 아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딸이 하나있습니다. 아기가 조금 늦게 생겼어요. 지금은 고3이고요, 대학입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붙잡고 주님께 영광 돌리도록 기도해주세요.
위로하고 격려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요. 또한 입소문이 날만큼 뜨거운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수원 온누리교회 모든 교역자는 수요예배에 참석하고 함께 예배드릴 것입니다. 예배가 좋으면 누구든지 와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과 평화롭게 잘 지내는 것이 장점입니다. 또 인테리어를 잘합니다. 부천 온누리, 상해 온누리에서 사역할 때 솜씨를 발휘했었습니다. 단점은 고집이 있습니다. 제가 겸손하게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대전 온누리교회

충성과 헌신으로 무장한 ‘박태영 목사’

박태영목사님1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으셨을 때 큰어머니의 전도로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신 그날 저녁부터 온 가족이 함께 가족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적적으로 만났고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면서 큐티, 일대일, 강해설교를 통해 말씀 속에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 통치하시는 하나님, 선한 목자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온누리교회에 오게 되었고, 제 안에 상처나 열등의식이 회복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빌립보서 2장 6~11절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온누리교회 대학부에 다니면서 경배와 찬양 사역을 섬겼습니다. 예배와 선교에 대한 강한 훈련과 도전을 받았고 평신도 선교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무슬림 나라에서 교수 사역을 하면서 제자 양육할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삶의 목표가 영혼 구원이라면 풀타임으로 함께 가자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군 제대 후에 그 부르심에 순종했고, 합동신학대학교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섬겼던 교회에서는 중고등부를 섬겼습니다. 온누리에서는 2002년부터 시작해서 기획 실행, 총괄, 총무 역할을 많은 부분 담당해왔습니다. 현재는 양육본부장과 대전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충성, 헌신, 창의력, 일대일 케어가 장점입니다. 일할 때는 철두철미하다는 말을 듣지만 사실 마음이 여러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약점은 지나친 배려심(?)으로 세상적으로 말하면 실속을 잘 못 챙기는 편입니다.
아내는 큰누나와 매형이 소개시켜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인격과 삶의 태도를 보면서 함께 한다면 너무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1년 반 정도 교제하고 28살에 결혼 했습니다. 가족은 아내와 자녀 네 명입니다. 세진이 16살, 유진이 13살, 하진이 7살, 막내 의진이가 5살입니다. 작년까지 홈스쿨링 10년을 했었고,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 성도에서 목사가 된 경우이기 때문에 온누리교회의 비전이 곧 저의 비전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를 꿈꿉니다. 더불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사회 선교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대전 온누리교회에서는 40일 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함께 기도하면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나누고 결정했습니다. 예배의 기름 부으심과 양육, 돌봄을 통해 그것을 이뤄나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전 교역자에서 평신도까지 교회와 사역자 자신의 영성훈련을 위해 기도모임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제가 진행하는 교역자 일대일 훈련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수요예배는 온누리 핵심가치와 성도의 삶 등과 같은 본질적인 부분을 강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대전 온누리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평택 온누리교회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김소리 목사’

김소리 (1)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감사하게도 축복받은 인생으로 시작했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에게는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좋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천안문 사태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중국을 섬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르시면 순종할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신학대학원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대학원 100기 출신인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스무 살 때 제가 다니던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일학교 교사와 반 보조교사로 섬기면서 만나게 되었어요. 친구로 지내다가 7년 동안 교제하고 결혼했습니다.
결혼은 일찍 했는데 아기가 생기기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 만에 어렵게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지금 18개월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아이가 없던 시간이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년 동안의 터널과 같은 고통의 시간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최근 난임 가정들이 많은데 그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소리’입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뜻하는데요. 목회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인생이었다면 저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이름에 담긴 비전을 따라 사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평택 담당목사로 부임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예배와 새가족, 전도에 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배에 초점을 맞추고 새벽제단의 100명의 기도용사를 세울 것입니다. 모든 예배에 뜨거운 성령의 임재가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교회이다 보니 새가족이 귀합니다. 그들을 잘 돌볼 것입니다.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도 고민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천 온누리교회

모든 족속이 예배드리는 그날 꿈꾸는 ‘서경남 목사’

서경남목사님 수정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나 남미에 살면서 선교를 배웠어요. 그곳에 한국교회가 없어서 처음에는 성당에 다니다가 미국유학 중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거듭나게 되었고요. 그렇게 1987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부르심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설마 했습니다. 그러다 북한선교의 사명을 주시며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퓰러(fuller)신학교를 갔고 학교를 다니면서 두란노에서 편집부장으로 일했어요. < 생명의 삶> 영어판을 제가 담당해서 만들었습니다. 이후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판 번역을  담당하다 하용조 목사님을 만났고 1997년 온누리교회에 왔습니다. 
한국에 사시는 큰 어머니의 중매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세 번 보고 2주 만에 결혼했어요. 그냥 ‘저 사람인가보다’ 하고 결혼했지요. 그렇게 34년을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자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습니다. 딸은 2년 전에 결혼했고 아들은 아직 싱글입니다. 저와 아내만 한국에 나와 있어요.
모든 족속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어요. 북한에 선교의 문이 열렸으면 하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심 받은 곳이 북한이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열리면 그곳에 온누리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예배공동체, 성령공동체, 선교공동체가 북한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아버지께 물려받은 믿음의 기업 이업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제가 4개 국어를 하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약점이라기보다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피부가 너무 까맣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온누리미션을 섬기며 깨달은 것이 ‘이 색깔을 갖고 어디를 가나 친근감을 줄 수 있겠구나’였죠.”

작성자  조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