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 장애인 문화예술상 수상한 사랑챔버 첼리스트 김어령 형제
어머니와 나는 언제나 2인 1조 … “모두가 행복한 세상 꿈꿔요”
지난달 31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예술상 시상식이 거행됐다. 장애인 문화예술상은 장애를 극복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 장애인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표창하는 자리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온누리교회 사랑챔버 김어령 씨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음악부문 수상자는 첼리스트 김어령!”
어령씨가 의기양양하게 강단 위로 올라가 상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 송명애 권사가 뒤따랐다. “지적장애인이 이런 상을 받다니…. 참으로 격양되는 순간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송명애 권사가 아들 어령씨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송 권사는 어령씨가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함께한다. 둘은 2인 1조다.
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아이가 이상했다. 돌이 지나도록 걸음마를 떼지 못했다. 말도 또래보다 서툴렀다. 그렇게 두 돌이 지났을 무렵 뇌종양과 뇌수종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쳐 뇌수술을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여섯 살이 되도록 걷는 것이 힘에 부쳤던 아이였다. 어령씨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사람들이 눈을 흘겼다. 그럴수록 어령씨와 어머니는 강해졌다. 어머니는 어령씨가 유독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차에 사랑챔버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지휘자 손인경 선생으로부터 첼로연주를 권유받고 첼로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령씨는 첼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첼로소리가 좋았던 어령씨는 첼순이(어령씨가 붙인 애칭)와 금방 사랑에 빠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베토벤 심포니를 연주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는 길이 비포장 가시밭길이었다. 재정적으로 힘들었고, 부부 사이도 좋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셨다.
사랑챔버는 어령씨의 고향과 같다. 어령씨가 첼리스트로 나고 자라게 한 곳이기 때문이다. 고마운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던 것처럼 어령씨에게도 은사가 있다. 사랑챔버 정현애 선생과 장윤정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령씨의 첼로 실력은 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에는 예상하지 못한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5백만 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는데 마련할 길이 없었다. 어느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셨다. 그 다음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느 분께서 주셨어요. 누구인지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시네요.”
필요한 만큼 정확한 금액이 계좌로 들어왔다. 그렇게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들이 현재의 어령 씨가 존재하게 만들었다.
사회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매번 어령씨를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대학교 대학원 음악과 진학했다. 어령씨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첼로 연습에만 몰두했다.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면 쉴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어령씨와 어머니의 꿈
어령씨는 지금 ‘밀알 앙상블’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밀알 앙상블 단원 중에는 어령씨와 함께 사랑챔버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시각장애인 청년과 엘리트 코스를 밟은 두 명의 음악가가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든 팀이다. 밀알 앙상블은 병원, 경찰서, 교도소 등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들의 소망이자 목표는 나눔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어령씨의 어머니 송 권사는 상장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적장애인 중에 정규직이 한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가 막혔다. 동시에 갑자기 책임감이 생겼다.
송 권사는 아침마다 생각해 둔 회사를 돌면서 기도한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녀는 그 벽이 무너지기를 바라면서 하염없이 기도한다.
“허투루 할 수 없어요. 다들 어령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열매가 있어야 따라오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 다음은 하나님 차례예요. 내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생명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청지기 노릇하기
<어령아, 훨훨 날아라> 송명애 지음 / 가이드포스트 / 12,000원
“많은 분들이 어령이가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거예요. 우리는 그 길을 걸어 온 것뿐이고요.”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여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지만 집안이 여유롭지도,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령씨의 부모는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죄책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진다. 때문에 아이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치 닿기 쉽다.
어령씨는 장애를 가졌지만 늘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표정에서부터 자신감이 엿보인다. 비결은 신앙교육이다. 모태신앙으로 믿음이 확실히 서있던 송명애 권사의 사랑과 교육 덕분이다. 송 권사는 어령씨를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달콤한 사탕을 까서 지쳐있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말하고 싶었다. 당신 탓이 아니라고. 함께 힘내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 간절한 바람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출간된 <어령아, 훨훨 날아라>는 어령씨와 어머니의 삶을 그렸다. 송 권사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느낌이다. 송 권사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곳곳에 묻어 있다.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 엄마의 소원이 초원이가 자신보다 먼저 죽는 것이었는데 송 권사는 그것이 답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저 내 생명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청지기 노릇하다 가는 거죠.”
/박잎새 기자 leaf@onnuri.org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