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국내캠퍼스

또 하나의 가족 ‘교회’

가정의 달 기획
 
미혼모에게는 맘앤맘스가 새 힘입니다!
엄혜정 자매가 만난 세상 둘도 없는 조력자  
<엄혜정 자매와 딸(혜율)이 활짝 웃고 있다.>

 
발랄하고 경쾌했다. 어쩌면 껄끄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덤덤하고 솔직했다. 미혼모 엄혜정 자매(32세)와 대화하면서 든 느낌이다. 미혼모가 된 사연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을 주저할 수도 있는데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엄혜정 자매는 아버지의 학대, 남자친구의 이기심과 무개념, 외로움과 절망 등 온갖 우여곡절 끝에 자립했다. 그녀가 엄청난 고난을 극복하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숨은 조력자 덕분이다. 그 숨은 조력자가 바로 온누리교회 맘앤맘스(미혼모지원사역팀)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엄혜정 자매는 9살 난 딸(혜율)과 함께 인천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어엿한 직장도 생겼다. 새내기 간호조무사로서 병원 일에 적응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오전 내내 실수만 왕창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녀에게서 진짜 기쁨과 행복이 느껴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혜경 자매는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랐다. 보육원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삶이 고통스러워졌어요.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아동학대를 당했거든요.”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유독 그녀만 학대했다. 너무 많이 맞아서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을 수십 번도 더했다. 하지만 하나 있는 남동생이 마음에 걸렸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남동생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 어린 마음에도 동생에게서 엄마에 이어 아버지까지 빼앗을 순 없겠더라고요.”
그녀 혼자 인천에 있는 보육원에 들어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당이었다. 전국을 전전하며 살다가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다.  
 
23살, 그렇게 미혼모가 되었다
 
보육원 생활은 괜찮았다. 아무렴, 매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 행복한 시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녀의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보호막인 보육원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보호종료아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있는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서 지내는 동안 너무 외로웠다. 친구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를 사귀어볼까 싶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했어요. 그곳에서 아이 아빠를 만났어요. 이야기 나눠보니까 괜찮은 사람 같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났어요.”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은 사람 같았다. 1년 정도 만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남자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인 사이가 되니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을 드러내더라고요. 특히 성적인 요구를 많이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배려 없는 행동이었는데 그때는 저도 어리고, 외롭고, 잘 몰라서 남자친구에게 많이 휘둘렸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하도 조르고 들이대서 성관계를 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댔다. 그 남자에게서 오만정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안 받아들이더라고요. 남자친구가 너무 무섭기도 하고, 아버지와 사이도 좋지 않아서 인천으로 도망치듯 와버렸어요.”
인천에 있는 친구집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임신 5개월이었다. 엄혜정 자매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와  남자친구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 나이 23살이었다. 그렇게 미혼모가 되었다. 
그래도 남자친구에게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 질문에 그녀가 막장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아이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 SNS를 보고 아기 사진이 있으니까 이상했는지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저를 보자마자 ‘그 아이가 내 아이인지 어떻게 보장하냐?’고 길길이 날뛰더라고요. 저랑 아이가 혹시라도 자기 발목을 잡을까 봐 미리 윽박지르려고 만나자고 했던 거였더라고요. 그날 이후 연락 한 번 없었습니다.” 
그녀의 고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혼자 아이 키우려니까 정말 힘들고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이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아이를 버리려고 제주도에 온다고 의심하더라고요. 제주도에 내려간 날부터 ‘사실대로 불어라’고 소리치며 때리더라고요.”
가족의 정이 그리워 찾아갔는데 또 한 번 좌절했다. 아니라고 애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한 달 반 동안이나 맞았다. 얼마나 맞았던지 허벅지 뼈가 부러져서 걸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집을 탈출했다.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면서 간 곳이 집 근처 개척교회다. 그 교회의 도움으로 병원과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과 등에 연결되었다. 치료받고 상담과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엄마, (맘앤맘스)집사님 만나러 가?”  
 
온누리교회 맘앤맘스와 연결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던 시설에서 온누리교회 맘앤맘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선해줬다.  
“예전에 미혼모 시설에 잠깐 있었는데 그때 맘앤맘스 봉사자들이 오셔서 봉사하는 걸 봤어요. 맘앤맘스와 연결된 미혼모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남들은 우리를 손가락질하는데, 맘앤맘스는 우리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거든요. 저한테까지 기회가 닿지 않아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기회가 찾아왔어요. 믿기지 않았을 정도로 기쁘고 감사했어요.”
그냥 좋았다.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꿈이 뭐냐고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 사심 없이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조언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이사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맘앤맘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맘앤맘스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그녀의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졌다. 오죽했으면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맘앤맘스)집사님 만나러 가?”  
미혼모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수많은 배 속 아기들이 세상 빛도 못 보고 사라지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저는 낙태가 어른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조심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즐기다가 아기가 생겼는데 그 책임은 오롯이 아이가 지고 있잖아요? 어른이라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온누리교회 성도님들과 맘앤맘스 집사님, 권사님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미혼모들을 많이 도와주세요. 미혼모들은 자격지심이 많아서 의기소침한 사람들이 많아요. 죄책감과 죄악감,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득한 사람들이에요. 미혼모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도와 지원, 격려를 부탁합니다. 온누리교회와 맘앤맘스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원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또한 받은 사랑 돌려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문의: 사회선교부 02-3215-3434, 3436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