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에 나를 가두지 말고…”
시각장애 딛고 일어나 새벽예배 섬기는 이효진 자매
“세상의 성공 가도를 달리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리 들여다봐도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다음 날 안과를 찾았다. 예상과 달리 나는 응급 환자였다.”
이효진 자매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 슬픔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장애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다며 오히려 기뻐했다. 그 아름다운 고백을 쏟아내는 그녀는 마치 한 폭의 꽃 같았다.
이효진 자매는 길공동체 홀리스타(새벽예배) 팀장으로 1년 째 섬기고 있다. 길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다. 그녀와 나눈 대화에는 아픈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 그 슬픔을 회고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녀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이효진 자매는 3남매 중 맏이다.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깊이 만난 것은 아이었다. 청소년 시절 쉽사리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도 많이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교회와 더 멀어졌다.
“말 그대로 무늬만 크리스천이었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안 그래도 친하지 않았던 교회와 더 멀어졌어요.”
그녀는 무역 관련 영업을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조용한 성격 탓에 부모님이 걱정을 참 많이 했는데 원하는 일을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무역회사에 입사한 이후부터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공을 키웠다.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참 많이 노력했다.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는 회사 해외 영업부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회식이 잦았다. 술 마시고 깨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녀가 일하는 부서는 신중함과 추진력이 필요한 곳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그녀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다 당시 다니던 회사 사장의 권유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대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나이 29세였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다니던 안과를 찾았는데 의사가 충격적인 말을 쏟아냈다.
“당신은 응급환자입니다. 대학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망막박리가 진행된 것 같습니다.”
충격 그 자체였다. 망막박리가 먼지도 몰랐다. 처음 들은 생소한 단어가 그렇게 큰 공포를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의학용어를 찾기 시작했다. 망막박리는 망막과 유리체가 만나는 부위에서 유리체가 망막을 안으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망막이 찢어진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망막이 눈 뒤쪽으로 떨어진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망막박리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처음 수술 경과는 좋았다. 첫 수술 이후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무리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1주일 정도 회사를 쉬고 어렵지 않게 일상생활을 했다. 배워보고 싶었던 마케팅 분야 회사로 이직도 했다.
그런데 2012년 또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다니던 회사가 예기치 않게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 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눈에 또 문제가 생겼다. 망막박리가 재발했다. 또 수술을 받았다. 수술보다 수술하고 나서 집에서 치료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 끔찍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의사가 알려준 자세만 취해야 했다. 눈에 충격을 가하면 안 되기 때문에 거의 엎드려 지내야 했다. 외부 활동은 완전히 금지된 상태였다. 의사말대로 3~6개월 동안 절대 안정을 취했다.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1년 동안 수술을 4차례나 받아야 했기 때문에 간호하느라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수술을 받았으니 오죽했을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효진 자매가 스스로에게 용기를 준 말이다. 바닥부터 다시시작하자는 말을 날마다 반복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 힘든 시기를 보냈던 그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교회를 찾아갔다.
공동체 순장모임은 그녀에게 유일한 빛이 되어주었다. 수술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세례 교육을 받고 세례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녀는 2013년 봄부터 공동체 생활을 차츰차츰 시작했다. 공동체에서 기도하는 동역자도 만났고, 생활의 안정도 되찾았다. CDC(순장교육)를 수료하고 순장으로 섬기고, 처음으로 아웃리치도 갔다.
“당시 아웃리치에 함께 한 동역자들이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그해 겨울부터 홀리스타(새벽예배) 자막 봉사자로 섬겼다. 명동 홀리스타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그 편안함이 그녀를 기도 처소로 이끌었다.
“세상 방법대로 살아봤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거에요.”
그녀의 고백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입술로 고백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5시 10분에 집을 나서기 위해 체력을 길러야했다. 부단히 애를 썼다. 그 수고로움을 견뎌낸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 줄 법한데 그녀는 모든 것은 동역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어쩜 그렇게 겸손할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의 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순전히 길공동체 지체들의 격려와 사랑덕분이에요.”
이효진 자매의 헌신은 여주 교도소 블레싱 사역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제소자들 앞에서 간증을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했다. 내성적이던 성격 탓에 남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던 그녀가 달라졌다.
지난해 이맘때부터는 길공동체 담당 김영창 목사의 권유로 홀리스타 팀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녀의 신앙과 헌신은 날마다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영성 일기를 써내려간다. 그 일기장에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자.”
“보이지 않는 육신의 눈에 나를 가두지 말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바라보자.”
하나님도 그녀가 무척 예뻤나 보다. 정말 큰 선물을 주셨다. 홀리스타 팀장으로 섬긴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그녀의 눈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찾아온 기적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또 어떤 기적을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