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 강단]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다

행 2:1~13
/ 박신웅 목사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할 것이다”라는 기다림의 선물이 드디어 <사도행전> 2장 가운데 성취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그 시간을 기도로 채우는 자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회가 출연하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이 오늘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성령님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바람같은 느낌으로 마가의 다락방 가운데 충만히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4절).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성령 충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성령 충만하다’는 뜻이 어근을 중심으로 두 가지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총 16번 ‘성령 충만하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에베소서>에 등장하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표현을 제외하고, 나머지 15번은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모해야 할 기도제목이 있다면 우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각과 모든 인격이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충만함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오늘 첫 번째 메시지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무릎 꿇으며,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것으로부터 새 일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데, 그 첫 번째 성령 충만의 모습을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헬라어의 2가지 동사의 용례 가운데 ‘핌플레미(π?μπλημι)’가 있습니다. 구약서 성령 역사가 임할 때뿐만 아니라 신약에서 15번의 성령 충만을 기록할 때 ‘핌플레미’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령님이 급진적으로, 순식간에, 갑자기 역사하실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 8장에 성령이 임할 때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갑자기 변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도망자였고, 배반자였고, 두려움에 떨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나서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담대하게 설교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을 통해서 치유의 사건 일어나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담대함이 생기고.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능력으로 임하면 순식간에 그 인생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령님이 임할 때 우리 삶에서 그동안 끊을 수 없었던 잘못된 습관을 버릴 있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날 때 방황하는 자녀들의 마음이 변화됩니다. 예수님 앞에 두 손 들고 돌아오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이 터치 할 때 우리의 육신과 질병의 모든 고통이 회복되고 치유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성령의 충만함을 묵상할 때 성경에 기록된 많은 표현 가운데 ‘플레로(πληροω)’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대표적으로 스데반을 포함해 지혜와 성령의 충만한 자를 일곱 집사로 세우는 과정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플레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 매일 매일 성령님과 동행하는 급 삶을 묘사할 때 ‘플레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라바를 파송할 때 ‘성령으로 충만한 자’라고 했을 때 표현 역시 ‘플레로’입니다. 플레로’는 성령님과 늘 함께하는 삶을 지칭합니다. 교회 리더로 세워진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는 성령과 함께했고, 열매가 있으며, 인격적인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는 급진적인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매일 매일 성령님과 동행하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맺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이 성령의 열매를 기록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화평과 자비, 양선과 충성,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경은 이 풍성한 열매들이 우리 삶 가운데 펼쳐질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 생각, 삶에서 성령의 향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의 향기와 비교할 수 없는 향기가 납니다. 미소가 있고, 밝음이 있고, 영혼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말씀과 행동 속에 성령의 함께하는 아름다운 열매와 향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늘의 언어를 사모하라!”
 
오늘 두 번째 메시지는 ‘하늘의 언어를 사모해야 한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의 방언이 무슨 내용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레타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인데 우리는 지금 저들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큰일들을 우리 각자의 말로 듣고 있습니다”(11절).
그 방언을 받아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큰일들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의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일, 예수님의 행적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늘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갖 두려움 속에 있는 세상의 말들이 아닙니다. 온갖 세상 사람들이 하는 소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성령 받고 나서 나타났던 언어의 변화는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크신 일들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언어가 된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똑똑하고, 유명한 지식을 말하기보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게 우리 삶의 최고의 기쁨이요, 최고의 자랑이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입술에 예수님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과 언어가 이와 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불평과 불만, 시기와 정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원하는 경쟁과 다툼 속에서 하늘의 언어가 아닌 땅의 언어로 가득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들을 향한 언어가 성령의 언어입니까? 아니면 나의 언어, 세상의 언어입니까?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향한 언어는 땅의 언어입니까?, 하늘의 언어입니까?  민수기 14장 27절과 28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이 악한 회중이 얼마나 더 내게 불평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너희에게 들은 그대로 너희에게 해 줄 것이다’”(수 14:27~28). 
하나님이 무서운 음성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끊임없고, 죽겠다는 그들의 모습대로 ”정말 내가 들은 대로 해 주기를 원하느냐?”는 하나님의 도전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것을 열매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하늘의 언어를 말하는 방언의 은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가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늘의 언어가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지면, 언어가 하늘의 언어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고,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늘의 언어를 회복했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언어가 나뉘어졌지만, 성령으로 다시 언어가 하나 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복을 경험한 공동체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수많은 치유의 역사와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음식과 복음이 나눠지는 초대교회의 놀라운 부흥이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흥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와 헌신 속에서 한국 교회에 부흥과 축복이라는 영광스러운 시대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다시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부흥의 불길을 붙이기 위해 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다음세대를 살아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가정을 살리고, 다음세대를 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한 사람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새로운 꿈과 소망의 역사를 써 내려가실 줄 믿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들을 그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들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요 14:12). 
연약하기 그지없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설교하니까 3천 명씩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기고,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많은 한국 교회가 함께 시리아 난민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예의상으로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시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뜨거워서 더 많은 팀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더 많은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교회가 생기고, 청소년들이 모이고, 어린이, 여성, 남성 성경공부 모임이 생겼습니다. 매주일 시리아 난민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벽예배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예배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방언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이 때, 그 한 사람이 부흥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하면 한국 교회와 열방에서 다시 <사도행전>의 아름다운 꿈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고, 다시 하늘의 언어를 사모하고, 다시 부흥을 위해 헌신하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