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부활이요 생명

요한복음 11장 25~26절_ 라준석 목사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활하고 무너졌던 영성이 부활합니다. 매일 삶 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인 일곱 가지의 ‘자기 선언’ 중 ‘선한 목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변해

암 투병 중이던 성도가 지난 금요일 소천 하셔서 어제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생전에 매주 1부 예배를 드리셨는데 예배 후에는 제가 늘 안수하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께서 투병 중인 아내를 극진히 간호했습니다. 제가 오후에 병원에 도착해 남편 되시는 분께 조의를 표하고 안고 기도를 하는데, 오늘 본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고 하셨는데 이 권사님이 영원히 살고 다시 부활해서 천국에서 살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남편 되시는 분이 최선을 다해서 사시고 다시 만날 때 기쁨으로 만나게 해 주십시오.”그러고 보니 이 말씀이 힘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마르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죽음’이라는 상황을 ‘생명’이라는 상황으로 바꾸십니다. ‘이별’의 상황을 ‘재회’의 상황으로 바꾸셨고, ‘절망’의 상황을 ‘희망’의 상황으로 바꾸셨습니다. ‘눈물’을 ‘웃음’으로, ‘한숨’을 ‘환희’로 바꾸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부활,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5장 29절을 보겠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해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에서 ‘선한 일’은 ‘예수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은 예수 믿지 않는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다시 살아나서 생명을 얻고, 믿지 않는 사람은 다시 살아나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살아나서 생명을 얻느냐, 심판을 받고 영멸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죽음 후에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죽음은 완전히 끝이라는 사상입니다. 두 번째,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또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사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윤회설과 부활입니다.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은 전생에 따라 다음 생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착한 일을 하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못된 일을 하면 동물이나 곤충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죽음과 부활이 윤회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입니다. 윤회설에는 정체성의 연결성이 없습니다. 다음 생애에서 내가 다시 나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살생을 안 하는 이유는 동물이나 곤충이 자신의 조상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의 핵심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부활하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으로 부활하는 것과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게 되면 한번 부활하게 되는데, 죽지 않고 생명으로 부활해 영원히 살게 됩니다. 또한 부활은 죽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모두 죽게 됩니다(롬 5:12).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일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우리는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고 죽음이 온 이후에 사람은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책 속에 있습니까? 사람 속에 있습니까? 공중에 있습니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의 부활로 이끌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분을 모신 사람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분을 모시지 않은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요일 5:1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예수님과 통하는 코드입니다. 물질도, 지식도, 살아온 경력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도’라는 것은 ‘육신적으로 한번 죽을지라도’라는 뜻입니다. ‘살겠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다시 살아 난다’는 뜻도 있고, ‘계속해서 산다’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요약하면 ‘나를 믿는 사람은 육신적으로 한번 죽지만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살아서 나를 믿는다’는 말은 일차적인 뜻입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읽으면 ‘살아서 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혼이 살아서 나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먼 훗날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삶 가운데서의 부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직장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죽었던 마음이 살아나고 모든 관계가 살아나고 영성이 살아나고 꿈이 살아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이 살아나고 비전이 살아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의 부활

부활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관계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활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고, 진노의 자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됩니다. 이러한 원초적인 관계가 부활합니다.두 번째는 영성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무너졌던 우리의 영성이 부활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에게 얼마나 좋은 분이지 알게 됩니다. 영성이 살아나면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는 육신의 부활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육신이 부활합니다. 네 번째는 삶의 부활입니다. 매일 삶 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TV에서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되어버린 남편’이라는 제목이었는데, 13년 전에 뇌출혈로 남편이 쓰러져서 아이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건강하고 자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13년 만에 다시 일어나서 가족을 위해 폐지를 줍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영상에서 십자가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부부는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서 인생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쳐 쓰러질 때도 있지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자신도 포기하고 가족도 포기하고 사회가 포기해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가 쓰러진 가운데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오늘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일어나 달려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