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2월 18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나
본문: 누가복음 15장 1~24절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장 절망적일 때 아버지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집입니다.
지난 토요일(16일) 잠실에서 열린 서울 러브소나타에 일본에서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후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것도 놀랐지만은 어떻게 꼭두새벽에 모일 생각을 했냐며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모인다고 사람이 그렇게 오냐고 묻는 것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집회였습니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생스러울수록 인생이 더 재밌고 더 신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밤 샐 만한 이유가 있으면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삶의 활력소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복음에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일 큐티 본문 중 15장 1~3절을 보겠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여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이런 일들이 100년 전 우리나라의 초대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백정이 교회에 들어오자 양반들은 ‘우리는 백정하고는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같이 앉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를 교회 다니게 하려면 백정을 다른 데 가게 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당신들도 소중한 만큼 백정들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백정의 사회적 위치는 노예 중에서도 노예였습니다. 결국은 양반들이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문화적 차별의식, 계급의식이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예수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들어주십니다. 첫째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의 비유입니다.(4~6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관계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양 한 마리가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기 때문에 찾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 가면 교회가 없습니다. 반대로 절은 많습니다. 그 절들은 모두 화려하고 중요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없습니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곧 일본입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동전의 비유가 나옵니다.(7~10절) 잃어버린 한 개의 드라크마 동전과 같은 나, 잃어버린 한 마리의 말썽꾸러기인 양과 같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간섭받는 것이 축복
세 번째, 그 유명한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11~12절을 보겠습니다.“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재산 중에서 제가 받을 몫을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살림을 나눠 주었다.”작은 아들이 재산 중에서 자기가 받을 몫, 곧 유산을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구합니다. 유산은 아버지가 죽어야 자식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바로 살림을 나눠줍니다. 탕자가 되는 첫 번째 원칙은 자기 몫을 챙기는 것입니다. 보통 아버지들은 이런 경우 유산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아들을 잃는 것 보다는 돈을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돈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들을 망하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특히 돈을 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이 주어지면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에 쓰지 못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며칠 뒤 그 작은 아들은 유산을 모두 챙겨 떠납니다.(13절) 간섭받기 싫고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멀리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섭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교회도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회든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이 있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의 피도 필요합니다. 경륜 있는 어른들과 조화를 이뤄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어집니다. 탕자가 되는 것은 어른을 떠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도 다 떨어질 무렵 흉년이 들어 일자리도 잃게 됩니다.(14~15절) 그러자 이 탕자는 일자리를 찾아다닙니다. 이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부러워할만큼 배고픔이 심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직장이 많이 생겨서 젊은이들이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용직들이 다 정상적인 직업으로 갈 데가 너무 많게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 모두 열심히 일하고 정말 사람답게 살고 어려움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집
돼지 쥐엄열매까지 부러워하는 신세가 됐을 때에야 탕자는 제정신이 들었습니다.(16~17절)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부해서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드디어 그가 그렇게 싫어했고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모든 아버지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항상 자녀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소리 지르고 때리기 때문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 이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탕자의 신세가 됩니다. 여러분이 가장 어려울 때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주라는 뜻입니다. 이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장 절망적일 때 아버지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집입니다.탕자는 마음이 가난해졌습니다. 드디어 철이 나자 아버지를 기억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들은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습니다.(20절) 회개란 일어나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죄는 다 잊고, 속아주며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과거의 잘못을 하나씩 다 따지고 지적하고 상처 받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모른 척 해 주셨고 잊어주셨고 묻지도 않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그것만 가지고도 그냥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대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보고싶은 아버지, 기대고 싶은 아버지, 내가 만신창이가 돼서 창녀들하고 놀고 재산을 다 탕진해도 또 받아주는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에 대해 혹시 상처가 있으면 다 푸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버지십니다. 그러면 가정이 다시 살아납니다.돌아온 탕자를 향해 아버지가 먼저 달려가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종들에게 ‘어서 가서 좋은 옷을 입히고 손가락지도 끼워주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잔치를 베풀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이미 금가락지도 잔치도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마지막으로 24절을 보겠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이 아들을 잃었다가 이제 찾았다. 이렇게 그들은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 드립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