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온누리교회 이야기
담임목사의 리더십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교회를 한 맡기실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다고 믿습니다.
제 강의가 LA온누리교회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개념에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담임 목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개척교회 담임 목회는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미국까지 가서 이민자를 상대로 그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교회에 역사하십니다.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역사가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저의 교회 개척 역시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준비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제 동의를 구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만드셨음을 뜻합니다. 저는 8년 동안 교회에서 굉장히 많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 할 때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으며 그 결정이 잘못된 적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임목사의 리더십
그동안 목회하고 공부하며 담임목사의 리더십으로 정리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미지 메이킹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믿을만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둘째는 디씨즌(Decision) 메이킹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걱정을 하지만 확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셋째는 메시지 메이킹입니다. 그냥 일어난 일에서도 설교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뽑아내는 것이 담임목사의 능력입니다.문제는 이 셋 중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리더십도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세울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교회개척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앞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고찰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남은 사역을 감당하는 곳입니다.하나님께서 저에게는 특별한 은혜를 많이 베푸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목회를 배운 것입니다. 온누리 교회의 특별한 점은 실제적인 터치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에서 목회의 실제 감각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목회 연구원을 섬기면서 그 곳의 엑기스를 다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신 좋으신 분입니다. 그 핵심 줄기는 교회론, 목회철학, 양육체계였습니다.제 목회철학은 교회와 성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은 아프지 않고 몸의 기능이 잘 돌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는 공급이 필요합니다. 말씀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운동은 성도간의 교제이고 아플 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남은 사역을 위해서는 티칭, 프리칭, 힐링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비전이 제시되어야 하고 사역을 위한 훈력이 있어여 합니다.우리교회 개척당시 저는 LA두란노 서원으로 보내졌고 제게 부여된 유일한 명령이 교회를 하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간 지 이틀 만에 윤형주 장로님이 교회를 만들자며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우리교회 시작 멤버들은 선교단체를 하다가 쫓겨나신 진취적인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은 문화 적응력이 뛰어나셨습니다. 또한 헌신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한 번도 교인들을 잡아 끈 적이 없습니다. 어딘가로 달려가는 분들이라서 뒤에서 방향을 잡아주기만 했습니다. 반면 이 분들의 약점은 교회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목사에 대한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 전형적인 목사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거부감을 덜 느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갈등이 있을 때 마다 출발점은 그 상처였습니다. 이분들은 소수민 으로서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민자들은 미국에 산다는 이유로 교만에 차 있지만 소수민이기 때문에 미국인에 대한 열등감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의 사조에 대한 열등감이 너무 심했습니다.
예배의 기초위에 치유와 선교를 세운다
목회는 약점과 문제점을 해결하고 장점을 살리는 것 입니다. 저도 이런 원리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제 목회철학은 ‘예배의 기초위에 치유와 선교의 두 가지 기둥을 세운다’입니다.예배는 진정한 권위의 존재인 하나님을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목사에게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권위가 깨져 있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진정한 권위인 하나님을 만나고 경외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 예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 울음은 마음의 음직임을 뜻했고, 독이 빠짐을 뜻했습니다. 예배가 없었다면 우리 교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배는 영적으로 공급받고 치유 받는 시간입니다.상처 있는 내면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어있는, 감정이 없는 내면입니다. 아니면 약한 내면입니다. 약한 것은 악한 것입니다. 약한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습니까. 아버지가 약해서 목사가 약해서 가정, 교회가 박살날 때 가족과 교인이 받는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비뚤어진 내면입니다. 이 내면을 치유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 필요합니다.선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선교적 선교와 목회적 선교입니다. 선교적 선교란 선교 현장을 위한 선교입니다. 목회자 선교는 그 선교의 궁극적 이유가 교인들의 회복입니다. 우리 교회의 선교가 목회적 선교입니다. 목회적 선교를 하면 교인의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자존감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제가 우리 교회에서 일하는 동안 세 가지를 주셨습니다. 첫째, 교회는 센세이션이아니라 영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센세이션으로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더뎌 보이지만 영향력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은 교인에게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교인들에게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지 않은 교인들을 위해 지금의 교인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모르는 사역을 하지 말고 아는 사역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유행하는 사역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8년 동안 내적치유에 집중했습니다. 일대일, 큐티, 성경탐구 등 제가 잘 하는 것만 했습니다. 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 앞에서 자신이 있었습니다.목회의 이념은 언제나 간단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념을 채택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내면적으로 치유 공동체, 외면적으로 선교 공동체였습니다.이제 마지막으로 치유 목회를 어떻게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치유사역이 중요해서, 그리고 제 은사가 거기에 있어서 치유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제가 처음에 온누리에 왔을 때 내적치유 위원회를 맡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세미나를 듣다 보니 자신없어하는 마음, 제 안에 끊임없이 생기는 갈등의 모든 원인이 제 상처였습니다. 치유에 관한 강의를 듣고, 집회에 참석하며 훈련받았습니다.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교회를 한 맡기실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다고 믿습니다. 주시지 않았는데 맡기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저는 내적치유를 배우며 목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치유사역에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면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치유하는 일이 참 좋고 그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성도들의 상황이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부유하게 살고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구하며 신앙생활에 열심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안에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면의 상처였습니다. 저는 내적치유를 주말에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중심을 치유에 맞춘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경건훈련도 진행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치유목회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치유와 연결시킵니다.이제 LA온누리교회가 생긴 지 8년이 지났고 이민사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회복이 있는 교회, 이민 교회의 역할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두 가지 비전을 품고 열심히 나가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