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부흥집회 | 둘째날 메시지
사랑의 능력을 사모하라 ■ 본문 : 고전 13:1~13
사랑의 결정적인 해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결국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야하는 것입니다 은사 제어장치 ‘사랑’어제 함께 나눈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병 고침의 은사를 비롯해 지혜, 지식, 방언, 능력, 통변, 예언 등 여러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입니다.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은사 중 최고의 은사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가장 큰 은사는 무엇입니까? 해답이 13장에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여러분, 능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능력을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 되기도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파탄과 시험이 옵니다. 은사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속도에는 반드시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제어장치 없는 속도는 파멸을 가져옵니다. 속도에는 언제나 제어장치가 필요하듯 ‘능력’에는 ‘겸손’이라는 제어장치가 필요하고 ‘은사’에는 ‘사랑’이라는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은사에 있어 왜 사랑이 중요합니까? 사랑이 없는 은사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축복도 주지만 때로는 시험도, 위기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의 가장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은사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사랑에 대한 편견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부모, 이성, 친구의 사랑입니다. 또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변덕이 많고, 감정적입니다. 비록 부모의 사랑이라도, 친구의 우정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 무제한적인 사랑,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보겠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의 언어와 천사들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땅의 언어이고, 천사의 언어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사람의 언어나 천사의 언어를 다른 말로 말하면 ‘방언’입니다. 1절에서 하는 말씀은 사랑은 모든 언어, 곧 방언보다 뛰어나고 우선한다는 것입니다.2절에 보면 “내가 만일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3절에서도 어떤 큰 구제나 선행이나 헌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편견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캐나다 토론토의 정신박약아를 위해 평생 살았습니다. 그의 글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처음 정신박약아들과 대면했을 때 ‘그동안 쌓아온 내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으로 그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의 몸짓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이외에도 허드슨 테일러, 테레사 수녀, 손양원 목사 등 이런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면의 인격적 변화가 ‘사랑’첫째,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보면, 사랑은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성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 내면의 인격적 변화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줍니까? 우리는 때로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말합니다. 사랑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말씀입니다. 또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친절하며,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질투나 시기도 아니요, 자기 자랑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과시합니다. 세상은 ‘사랑은 자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은 교만치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말한 사랑의 은사가 우리가 생각했던 사랑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사랑에 대한 개념이 변하기 바랍니다.둘째, 사랑은 타인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처럼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의 인격을 너무 무시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돌보지 않습니다. 대화를 할 때도 자신의 돈, 신분, 업적을 가지고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분노합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왜곡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분노, 적개심, 미움, 복수심을 갖지 않습니다.셋째, 사랑은 진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6~7절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견디고, 타인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희생도 하십시오. 헌신도 하고, 위대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성품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8절에서 이런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이런 새로운 사랑에 대한 시각이 여러분에게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희생도 하십시오. 헌신도 하시고, 위대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의 성품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또 진리를 갖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런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사도가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사랑은 믿음과 소망보다 더 위대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과거적 의미가 있고, 소망은 미래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현재적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입니다. 현재의 주인공은 사랑입니다.여러분 이 사랑의 결정적인 해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예수님을 적용시키면 완벽하게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고, 예수님은 온유하다는 말씀을 적용해보면 그 말이 다 맞아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정의는 옳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처럼 돼야 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 축복의 날에 여러분 모두 예수님처럼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같은 성격을 갖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행복과 감동을 나누는 사랑의 사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사랑의 결정적인 해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결국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야하는 것입니다 은사 제어장치 ‘사랑’어제 함께 나눈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병 고침의 은사를 비롯해 지혜, 지식, 방언, 능력, 통변, 예언 등 여러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입니다.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은사 중 최고의 은사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가장 큰 은사는 무엇입니까? 해답이 13장에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여러분, 능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능력을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 되기도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파탄과 시험이 옵니다. 은사를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속도에는 반드시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제어장치 없는 속도는 파멸을 가져옵니다. 속도에는 언제나 제어장치가 필요하듯 ‘능력’에는 ‘겸손’이라는 제어장치가 필요하고 ‘은사’에는 ‘사랑’이라는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은사에 있어 왜 사랑이 중요합니까? 사랑이 없는 은사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축복도 주지만 때로는 시험도, 위기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의 가장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은사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사랑에 대한 편견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부모, 이성, 친구의 사랑입니다. 또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변덕이 많고, 감정적입니다. 비록 부모의 사랑이라도, 친구의 우정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 무제한적인 사랑,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보겠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의 언어와 천사들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땅의 언어이고, 천사의 언어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사람의 언어나 천사의 언어를 다른 말로 말하면 ‘방언’입니다. 1절에서 하는 말씀은 사랑은 모든 언어, 곧 방언보다 뛰어나고 우선한다는 것입니다.2절에 보면 “내가 만일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3절에서도 어떤 큰 구제나 선행이나 헌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편견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캐나다 토론토의 정신박약아를 위해 평생 살았습니다. 그의 글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처음 정신박약아들과 대면했을 때 ‘그동안 쌓아온 내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으로 그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의 몸짓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이외에도 허드슨 테일러, 테레사 수녀, 손양원 목사 등 이런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면의 인격적 변화가 ‘사랑’첫째,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보면, 사랑은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성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 내면의 인격적 변화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줍니까? 우리는 때로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말합니다. 사랑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말씀입니다. 또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조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친절하며,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질투나 시기도 아니요, 자기 자랑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과시합니다. 세상은 ‘사랑은 자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은 교만치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말한 사랑의 은사가 우리가 생각했던 사랑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사랑에 대한 개념이 변하기 바랍니다.둘째, 사랑은 타인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처럼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의 인격을 너무 무시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돌보지 않습니다. 대화를 할 때도 자신의 돈, 신분, 업적을 가지고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분노합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왜곡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분노, 적개심, 미움, 복수심을 갖지 않습니다.셋째, 사랑은 진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6~7절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견디고, 타인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희생도 하십시오. 헌신도 하고, 위대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성품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8절에서 이런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이런 새로운 사랑에 대한 시각이 여러분에게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희생도 하십시오. 헌신도 하시고, 위대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의 성품부터 변화되어야 하고 이웃과 가족에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또 진리를 갖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런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사도가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사랑은 믿음과 소망보다 더 위대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과거적 의미가 있고, 소망은 미래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현재적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입니다. 현재의 주인공은 사랑입니다.여러분 이 사랑의 결정적인 해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예수님을 적용시키면 완벽하게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고, 예수님은 온유하다는 말씀을 적용해보면 그 말이 다 맞아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정의는 옳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처럼 돼야 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 축복의 날에 여러분 모두 예수님처럼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같은 성격을 갖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행복과 감동을 나누는 사랑의 사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