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기획ㅣ일본, 복음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있다

 ● 일본 들여다보기 ● 조상숭배 등 뿌리 깊어 ‘선교사의 무덤’ 불리기도“복음 1% 안되지만, 하나님 임재 경험하면 부흥 가능”  러브 소나타가 뜨거워지면서 선교에 앞서 일본 문화를 이해하려는 성도들이 늘고 있다. 일본 선교, 문화와 관련해 정평이 나 있는 테라다 유이찌 목사(요시가와교회 담임)의 책 ‘일본선교의 비밀을 벗긴다’를 중심으로 한 일본 소개를 통해 일본선교에 한 발 다가서는 기회를 마련했다.조상숭배원리…협동체 이탈의 두려움많은 일본인은 자동차까지도 신사에서 푸닥거리를 하고 부적을 붙이고 다닌다.  가정에는 가미다나 혹은 부쯔단 같은 것을 세워 숭배한다. 조상숭배원리가 일본인들의 영혼에 상상 못할 정도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유이찌 목사는 “일본에서 전도하려고 할 때 최종적으로 조상숭배원리에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일본 사람에게 신앙고백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이 원리가 스스로 청산되지 않는 한 구원 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충고한다. 조상숭배원리에서만 해방되면 일본 사람 역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상숭배원리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산중타계설이다. 이는 죽은 사람의 영은 그대로 개성을 지닌 더러운 상태이며, 자손들이 이 영을 받들어 모셔서 끝까지 깨끗해지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을 해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완전하게 정화된 죽은 자의 영은 소레이가 되고, 이 소레이가 더 승화되면 조상신이 된다. ‘생→사→소레이(조상신)→재생’이 조상숭배의 근본원리가 되는 영혼의 순환이다. 조상숭배의 공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의 이 같은 생각은 집이나 마을의 협동체를 중시하고 스스로가 그 일부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협동체를 떠나서는 자신이 존재할 수 없으며, 협동체와 관계를 맺을 때 정체성을 갖게 된다. 결국 일본인에게는 개인의 신을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인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협동체로부터 결별당해야만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복음을 믿으면서도 협동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의 조상숭배원리를 부정하여 일본에서 성공한 종교는 없다. 봉(8월 15일에 조상을 제사하는 행사), 묘, 신사참배, 조상숭배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종교든 무방하다는 것이 일본문화의 현실이다. 신도…하위종교면 기독교도 OK  조상숭배가 일본문화의 근본원리라면 신도는 조상숭배를 의식화한 것이다. 신도는 조상숭배가 종교화된 것이며, ‘일본인만의 민족종교’이다. 즉 일본인 이외에는 신자가 될 수 없다. 일본에는 수많은 신도행사가 이뤄지는데 기독교인 아닌 일본인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신도행사와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신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하쯔모데(1월 1일 일본인들이 신사에 가서 복을 비는 것)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도행사 속에서 일본의 일 년이 흘러가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그것이 우상에게 복을 비는 신도행사인 것조차 알지 못하며, 기독교인들처럼 그것을 거부하는 일본인이 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히고꾸민(국민이 아님) 혹은 비일본인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일본에서 신도 이외의 종교는 국가신도 ‘아래’ 있는 한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즉 어떤 것을 믿고 예배해도 좋으니 먼저 고소신인 아마데라스를 신사참배하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에 하라는 것이다. 일본의 과거 기독교 교회는 ‘신사참배란 종교의례가 아니다’라는 국가의 미혹에 넘어가 신사참배를 인정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천황제…천황은 신의 아들  조상숭배와 신도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일본의 천황제다. 일본의 천황은 다른 나라의 왕이나 황제와는 다르다. 국가를 초월한 일본의 역사적 상징이며 일본 그 자체인 것을 넘어 ‘신의 직계’라는 종교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천황이 신적 권위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발단은 기원전 3~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륙에서 넘어와 혼슈긴끼에 나타난 야마토 민족은 당시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토착민간신앙인 신도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려고 시도한다. 즉, 당시 많은 토착 신들 가운데 아마데라스를 최고 지위에 올려놓고 자신들을 그 신의 직계인 천황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끼신와라 불리우는 ‘일본서기’(720년)와 ‘고사기’(712년)  두 권의 역사서가 역사 호도의 수단이 되었다.천황제는 쇄국정책을 폈던 도꾸가와 막부시대(1603~1869년)에는 유명무실하다가 1869년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다시 강력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괴물과 같은 얼굴이었다. 73개 지역과 270개로 흩어진 소국을 거느리고 있던 신 정권은 서구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구심력이 필요했고,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하에 천황제가 다시 강력한 지배원리로 구축되었다. 1889년 제국헌법은 제1조에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함’, 제3조에 ‘천황은 신성이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 천황이 일본국의 ‘신’임을 헌법으로 천명해 버렸다. 이처럼 천황제는 일본의 오래된 토착종교를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교묘하게 이용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허구적인 것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강력한 힘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와 유교…장례식과 체제확립에 동원 일본의 불교는 원래의 불교와 다르다. 애초 무신론이어야 할 불교가 조상숭배, 장례식 등과 연결되어 일본인의 생활을 지배하며 국가적 종교로 되어갔다. 불교는 도꾸가와 막부가 기독교를 금지하기위해 도입한 것으로 도꾸가와 막부는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불교 사찰을 이용해서 모든 일본인은 물론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까지도 반드시 어느 절에 소속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그 소속된 절에서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서 일본 불교가 장례식을 행하는 종교로 바뀌었고, 명치유신까지 3백 년간 계속되면서 불교의 원래적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현재 일본의 스님들은 장례식을 행하고 묘를 지키는 이외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불교보다 영향력은 작지만 유교 또한 일본의 정치체제, 윤리, 도덕적인 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불교가 인간의 죽음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반해 유교는 인간관계, 윤리 등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적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부자관계, 부부관계, 주종관계, 나아가서는 죽은 자의 영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유교만큼 일본인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도 없다. ‘천명’에 순종하는 것이 유교에서 나왔고, 천황제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기독교 탄압과 일본문화  1549년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코 쟈비엘(1506~1552년)을 통해 일본에 정식으로 기독교가 전래되어 온 것은 일본 기독교 역사의 시작인 동시에 심한 탄압과 일본선교 실패 역사의 시작이었다. 올간티노 등 헌신적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초기에는 기독교가 부흥해 70여 년 후에 기독교가 금지될 때까지 80만 명의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였다. 당시 인구가 150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부흥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서양제국에 대한 지배자들의 두려움과 조상숭배를 부인하는 기독교는 일본의 풍습과 습관을 파탄시킨다는 이유로 무서운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도꾸가와는 1612년 결국 금교령을 발표하고 수많은 선교사와 신자들을 체포, 추방, 살인했다. 80만 명의 신자들에게 수많은 비극이 초래되었다. 순교자는 20~30만 명으로 전해진다. 1639년에는 쇄국령까지 내려져 이후 300년간 국내적으로 기독교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기독교 박해의 역사를 통해 일본인의 체질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행한 기독교 탄압의 방법을 보면 오늘날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체질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탄압의 대표적인 수단이 테라우께 제도다. 이는 외국인을 포함한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주민등록처럼 종교에 관계없이 반드시 어딘가의 절에 소속해야 하도록 한 제도다. 테라우께 제도와 함께 절에 소속해 있는 사람들을 각 마을마다 조사했고, 절 소속 증명서가 없으면 여행, 혼인, 이사, 취직 등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후미에라는 탄압도 있었다. 매년 한 번 마리아나 예수의 그림을 밟도록 한 것인데 이 제도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5인조제도도 있었다. 농민들을 다섯 가옥씩 한 조가 되게 해서 기독교인 적발을 하게 한 것인데 이 제도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가공할만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렇게 기독교인이 적발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친족까지 기리시단계열이라고 단정하여 남자는 7대까지, 여자는 4대까지 사람들로부터 격려시켜 특별감시하에 두었다.  뿌리 깊은 일본 기독교 역사 일본 기독교의 역사는 한국보다 뿌리 깊다. 1549년 처음 들어온 이후 458년이 지났다. 초기 기독교는 무디와 같은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적인 성격이었다. 건전하고 순수하고 십자가 앞에 정직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예수님이 베푼 은혜 때문에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다. 일본의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당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현재 1%에 못 미치는 복음화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초기 일본 기독교인들의 순수한 믿음과 신앙은 지금도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용조 목사는 “일본 성도들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은혜를 다시 경험한 성도들이 새벽기도의 불까지 지피고 있다. 지금까지는 계속된 실패로 손을 놓고 있었지만, 순종과 열정을 회복한 일본 성도들이 다시 손을 잡고 일어나고 있다”고 일본 성도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하나님의 임재 경험 급선무 하용조 목사는 지난 11일 특별새벽기도에서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적으로 부흥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되면 다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하 목사는 이 부흥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며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일본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5천명의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가서 뭘 하겠습니까. 가서 기도해야죠. 엎드려 기도합시다. 서 있기만 해도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 목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했다.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고, 일본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날 것을 소망하며 엎드려 기도하는 것. 이번 러브 소나타의 부흥을위해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할 일들이다./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