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희망의 나무

이재훈 목사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희망을 선물해줍니다.희망의 나무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지난해 3월 11일 쓰나미가 이와테현의 리쿠젠타카타 시의 소나무 공원을 덮쳤습니다. 이 공원에는 260년 넘게 살아온 소나무 7만 그루가 있었습니다. 쓰나미로 모든 소나무가 뿌리 채 뽑혀 사라졌는데 단 한 그루만 기적적으로 남았습니다. 이 나무는 뿌리가 바닷물에 젖어서 더 이상 살수 없었지만 나무의 가지를 통해 또 다른 소나무 18그루의 모종으로 사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희망을 주는 나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호흡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영혼에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미래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에서 자주 발견되는 말이 바로 ‘더 이상 희망이 없다’입니다. 사람이 희망을 잃어버리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쉽게 절망합니다. 엄청난 재난뿐만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절망합니다. 절망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절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머물러 있으려고 합니다. 위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절망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인간의 연약함이 더 큰 절망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은 확신이 있는 희망입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확신이 있는 희망을 가져다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희망의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막연한 기대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왜 세상의 희망입니까? 첫째,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실을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기대를 불어넣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실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진실로 대하면서 동시에 희망이 가득하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이 담긴 희망을 전해주셨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눈 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 부모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고난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과 질병도 희망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 앞에서 절망하지만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희망을 전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진실을 외면한 희망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체험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예수님 안에 있는 희망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도 진실을 깨닫는 동시에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됩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이 세상에 희망인 이유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사람들은 문제와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미래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의 하나님이 아니라 희망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우리같이 평범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변화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은 장애가 아닌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절망하게 하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있다면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넘겨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억울하고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가장 큰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사람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을 뱉고 채찍으로 때려  죽일 것이다. 그러나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막10:3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세상의 어떤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있을 일을 예언했습니까? 다시 살아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고 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죽음의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리고 간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건은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죄가 조금도 없으신 의로운 분이 죄로 가득한 악인들에 의해 죽임 당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로운 사람들보다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절망의 나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절망의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절망을 모두 죽였습니다. 절망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할 때 오는 것입니다. 거부한 대가로 인류가 절망하게 되었고, 절망 가운데 죽어가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희망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뜻밖에 만나는 불행한 사건이 아닙니다. 희망을 가로막는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입니다. 우리가 죄에 굴복할 때마다 희망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모든 죄를 절망의 나무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절망을 희망의 도구로 변화시켰습니다. 누구든지 희망의 나무를 바라보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용서하신 예수님에게 희망을 두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을 향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이곳까지 온 것은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리쿠젠타카타의 소나무는 하나의 희망을 전해주었지만 영원한 희망은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희망을 선물해주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절망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희망의 나무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다카마스가 변화될 것입니다. 일본이 변화될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십시오. 더 이상 절망의 사람이 아니라 희망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