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5분 전도 간증> “무신론자 아버지, 전도콜센터 통해 구원”
스물네 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저는 삶의 고단함으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유학을 간 1년 후 가을, 주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제 가족을 소개하자면 오빠와 어머니는 증산교에, 여동생은 안식교를 믿으며 아버지는 무신론자이십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아 일본에서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부모님은 매일 싸우셨고, 자녀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제 안에는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제 심령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의 영혼이 보이고 가족만 생각하면 긍휼한 마음에 목이 메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매일 밤을 새며 눈물로 편지를 썼는데 거의 10장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 이상하게도 제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말입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제게 무신론자인 아버지를 먼저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전도콜센터를 통해 ‘가족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모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박인숙, 임성숙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두 분에게 가족의 종교적 상황을 말씀드리고 중보기도 요청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7월에는 박인숙 권사님이 부모님이 사시는 광주까지 KTX를 타고 오셔서 아버지께 복음을 전해주셨는데 마지막 영접질문에 아버지는 ‘나는 나 자신을 믿소’하시며 거부하셨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저는 아버지 팔을 붙들고 ‘아버지를 위해 여기까지 KTX를 타고 오셨어요’ 외쳤고, 아버지는 마지못해 반강제적으로 영접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증산교에 빠져 제주도로 이사 간 오빠와 어머니 때문에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이 열심히 살며 노후대책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으셨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셨습니다.
공허함 내려놓고 주님 붙잡아
그 후 저는 선교지에 나가있어서 아버지와는 공백 기간이 있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기도밖에 할 수 없었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두 권사님께서는 다시 아버지를 만나 복음을 전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를 서울로 올라오시게 했습니다. 권사님 두 분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아버지는 혼자 살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연금으로 떳떳하게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들도 아버지께 현명한 처사라고 칭찬을 하시면서 ‘우리도 그런 점을 본받고 싶다’고 하시자 아버지의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신이 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경제적으로 해결되어도 인생은 외롭고 공허하며 행복이 없지요’라고 질문하자 아버지는 무척 외롭다고 하시며 속내를 털어놓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터치와 함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이번에는 진심으로 한번 다가가 보겠소’라고 하시며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당신의 아집으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자신만 믿고 산다 하셨던 아버지가 순한 양이 되셨습니다. 정말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 연락이 왔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집사님의 인도로 교회에 나간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혼자서도 매주일 교회에 나가시며 얼마 전에는 집에서 구역예배까지 드리셨습니다. 아버지가 몸과 정신이 건강하실 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 평안을 누리시길 바라고, 증산교에 빠져 제주도에 계시는 어머니와도 예수님 안에서 화해가 이루어져 가정이 하나 되길 기도합니다. 저와 같이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도 ‘전도콜센터’로 와서 도움이 손길을 받았으면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 장승희 성도(S브릿지공동체)
■ 온누리 5분 전도
․개강: 3월 3일(주일) 오전 8시50분 서빙고 홍보관
․문의: 이익식 팀장(011-708-7926)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