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온누리교회의 선교를 생각한다
“선교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해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사역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분들은 사역과 관심에 따라 군선교, 농어촌선교, 직장선교, 미용선교, 스포츠선교, 미디어선교, 문서선교, 영상선교, 심지어는 남녀선교회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들의 광범위한 활동을 선교라 이해하기도 한다. 그만큼 선교라는 용어 자체가 폭넓은 적용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선교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성경을 예로 들고 싶지만 정작 성경에는 ‘선교’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선교, 곧 Mission은 라틴어 Mitto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성경에서 의미적으로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는다면 ‘사도’라는 말의 어근이 된 헬라어 ‘아포스텔로’ 즉 “보내심을 받음”이라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선교적 기도를 드리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냅니다.”(요17:18) 다시 말해 선교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따라 보냄 받은 자의 일’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이렇게 폭넓은 선교의 정의를 전제하면서도 온누리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해외선교로 대표되는 ‘타문화권 선교’에 집중하여 왔다. 교회의 머릿돌에 새겨진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세계복음화’란 위임명령에 따라 ‘선교에 목숨을 건 교회’로 여기까지 헌신하여 온 것이다. 그것이 2000 선교사 파송 비전이며, 이를 이끌어 가는 추진력이 Acts29의 비전이다.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기질이 있고, 가정에는 각각의 가풍이 있듯이 온누리는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한 교회이고 지금의 온누리교회는 이런 영성과 비전에 의해 성장해 왔다. 세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축소되거나 후퇴해서는 안 되는 온누리교회의 사명 그 자체이다.
한편 온누리교회는 이미 한 지역교회의 수준을 넘어 한국교회가 모두 지켜보는 대표성을 가진 교회가 되었다. 당연히 한국사회가 기대하는 커뮤니티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선한 영향력도 확대 되어야 한다. 세상 한 가운데 파송 받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복음의 모델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한 가운데 파송 받은 제자 공동체로서 이들의 필요와 아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밝은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긍휼사역과 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 왔다. 군포 하나로와 번동 코이노니아 등의 센터 중심의 사역뿐만 아니라 온누리복지재단과 서울시가 함께 하는 다양한 복지시설들을 운영해 왔으며, Lamp On이란 이름으로 긴급재난구호팀으로 국내외 아픔 당한 현장들을 찾아가 섬겼다. 최근에는 온누리NGO로 설립된 ‘더 멋진 세상’이 설립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강도 만난 이웃의 좋은 이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올 해부터 사회선교본부를 조직함으로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세상 가운데 파송 받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게 되었다.
차제에 타문화권선교와 사회선교에 대한 개념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조부로부터3대에 걸친 인도선교사였으면서 풀러선교대학원을 설립하여 세계선교신학을 이끌었던 도날드 맥가브란 박사는 ‘선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전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영혼구원에 집중하는 전도와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 사회정의는 선교의 양날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선교의 목적은 한 개인이 예수 믿어 천국 가는 것 뿐 아니라 그 의 삶 전 영역이 그리스도께 드려지기를 원한다. 그것을 전인적 구원이라 부른다. 이를 위해서는 한 사람, 혹은 지역에 관계 되어 있는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온누리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총체적인 구원사역이 타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이천선교본부에서,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사역을 사회선교라 부른다.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의 섬김과 사역의 지향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단연코 영혼구원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긍휼사역을 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저들의 가장 궁극적이고 영원한 행복을 위한 총체적 사역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최근 선교란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선교 저변화가 질적 선교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선교이면 선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요리를 하지만 다 요리사는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만 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아닌 것과 같다. 선교의 보편성과 선교의 특수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을 때 교회는 미션’얼’을 가진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가 될 수 있다. 아울러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금식하며 따로 세우고 선교사로 파송했듯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지속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온누리교회는 선교사역이라 부를만한 다양한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만의 고유의 사명과 영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신속한 세계복음화에 더욱 집중하는 교회로 흔들림 없이 이 길을 달음질 해 가기를 소망해 본다.
작성자 조은실

